환승(Trans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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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Transfer)
  • 김한호 목사
  • 승인 2020.11.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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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Transfer)이란 한 교통수단에서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많은 환승을 거쳐야만 온전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떠한 일이 펼쳐질지, 어떤 상황이 나타날지 알 수 없기에 그 과정에 두려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신앙의 여정 속에 많은 환승을 했던 인물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억울한 모함을 받고 지하 감옥에 갇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감옥에서 나와 우여곡절 끝에 164km나 떨어진 ‘데살로니가’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3주 동안 말씀을 강론하고 있는데, 불량배들이 나타나 바울을 괴롭힙니다. 할 수 없이 도망간 곳이 ‘베뢰아’입니다. 그런데 불량배들이 여기까지 따라옵니다. 결국 견디지 못한 바울은 다시 ‘아덴’으로 갑니다. 아덴에 가보니 이곳은 온갖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이 어떻게 고린도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할 때 고린도 출신 ‘스데바나’를 만났습니다. 스데바나가 아덴에 방문하였다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바울에게 고린도에 대한 상황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막상 고린도 지역에 와보니 말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였습니다. 인구만 하여도 75만 명이 사는 대도시에 거대한 항구가 있는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우상숭배는 극에 달하였고, ‘코린티아조’(korinthiazo)라고 하면 ‘음행하는 자’라는 대명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644km에 달하는 수많은 지역을 환승해 가며 이곳저곳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가는 곳마다 고난을 당하고, 복음의 사역은 계속해서 막히니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바울이 변함없이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Mario Joseph’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무슬림의 ‘이맘’이었다가 기독교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종교를 바꾸어 가며 신앙의 환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알라는 우리를 ‘종’이라 부르고, 자신은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자녀’라고 부르고, 자신은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코로나라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며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복음은 위축되고, 예배는 무너지고,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퇴보하였습니다.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수많은 환승 여정 속에서 귀한 만남의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환승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는 성도여러분, 힘들어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그분만을 외치며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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