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세례에서 보는 유아세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것처럼, 츠빙글리는 유아세례를 베풀어야 함을 확신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을, 누가 금할 수 있으리요!” 또한 대적자들은 예수께서 어린이를 말하지 않고, 어린 아이 같은 자들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이에 츠빙글리는 예수께서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그들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셨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두 가지를 했는데, 먼저는 어린이를 본인의 품에 안으시고,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리스도는 그들로부터 우리에게 오셔서 육체적이고 보이는 세상에 속한 우리를 천국으로 높이셨다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예수께서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말한 것은, 어린이의 순수와 겸손을 염두에 둔 것으로, 기독교적 삶이 바로 순수와 겸손으로 크리스천은 바로 어린이에게서 두 가지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어린이를 단지 비유로 일컬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고린도전서 7:14을 가져오며, 성경은 부모 중 한쪽만 믿어도 자녀를 믿는 자, 믿음의 거룩한 자로 여기기에, 그러한 아이에게 유아세례를 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사도들에게 그리스도를 향하여 세례를 베풀었던 것처럼, 신앙 안에서 양육될 아이들에게 같은 원리로 물로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아세례와 성경
츠빙글리는 유아세례에 관한 적대자의 네 가지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정리하며 답한다.
1. 사도들이 유아세례를 베푼 적이 없고, 유아세례에 관한 어떤 말씀이나 그 예가 없기에, 유아세례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이의에 대해 츠빙글리는 답한다. 성경은 세례를 외적 할례라고 하는데, 외적 할례는 내적 할례를 전제할 때만 가치를 인정할 수 있기에, 외적 할례는 앞선 내적 할례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 역시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세례를 베풀었으며, 바울이 스데반 가문 사람들(고전 1:16)과 간수 가정 모든 구성원(행 16:33)에게 세례를 베풀 때도 유아에게까지 세례를 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mehr Wahrscheinlichkeit)고 본다.
2. 사도들은 세례를 베풀 때 언제나 세례받을 자의 신앙을 먼저 점검하였다는 주장에 대해 츠빙글리는 답한다. 츠빙글리는 한편 이 점에 대해 쉽게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때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답한다. 츠빙글리는 한 마디로 아니요! 라고 답한다. 이는 얼른 듣기에는 맞는 것 같지만, 일종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사도들은 병자를 고칠 때 믿음을 물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3. 마가 16:16 “믿고 세례는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지 않은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라는 말씀 따라 믿음이 먼저 전제되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까마귀에게도 세례를 베풀 것이라는 이의에 대해 츠빙글리는 이 말씀은 어린이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라고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