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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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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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2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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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이 땅의 그루터기 / 이사야 6:6~13 / 찬송: 455

뿌리 깊은 나무의 그루터기는 생명의 연속성을 가집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다시 움이 돋아나는 것은 그루터기에 생명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을 식물의 그루터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어려움이 있어 마치 가지처럼 베임을 당하여도 거룩한 생명이 보존된 그루터기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구별하셨기에 그를 거룩한 씨라고 말씀하시며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아브라함을 마치 석공이 큰 바위가 필요해서 떠낸 반석과 같이, 도공이 흙덩이에서 파낸 흙과 같이 세상에서 분리하여 떼어내었다고 말씀하십니다(51:1). 세상에서 떼어진 사람이 이 땅의 거룩한 씨가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그루터기로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미래는 거룩한 그루터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존하시는 그루터기만이 이 땅의 미래와 희망이란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겨자씨 같은 작은 씨앗이 그루터기처럼 자라야 합니다. 믿음을 키우고 그리스도께 뿌리가 깊이 내려진 생명의 그루터기가 되어야 합니다. 연약한 나무는 온전한 그루터기가 될 수 없듯이 당신만은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이 온전하여 하나님 나라의 보루인 그루터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도 거룩한 그루터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최도경 목사 / 송탄평화교회

 

화요일 / 형통한 자 / 창세기 39:1~6 / 찬송: 384

우리는 요셉이 꾼 꿈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가 꾼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신앙으로 승리하여 형통한 자가 되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고 쉽게 요셉의 생애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본문 속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통이라는 내용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는데 성경은 그런 삶을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는데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통은 우리가 납득하기 어려운 형통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형통은 애굽에 팔려가지 않아야 했으며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신앙양심을 지켰는데 감옥으로 보내지는 것이 무슨 형통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성도의 형통은 내 꿈을 이루며 내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자의 인생에 계획과 목적을 세우셔서 우리의 기대와 다른 때론 고난의 길이지만 요셉의 생애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시는 길이기에 형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망하는 길이라 시편기자는 정의합니다. 시편 1편 말씀을 요셉의 생애에 비추어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나의 현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정종현 목사 / 신애교회

 

수요일 / 잘못된 판단 / 룻기 1:1~5 / 찬송: 341

남편과 두 이들을 잃은 나오미의 이름의 뜻은 나의 즐거움이란 뜻입니다. 어느 인생이든지 하나님을 만날 때 즐거움과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엘리멜랙의 식구들은 베들레헴을 왜 떠났을까요? 무엇 때문에 떠나야만 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일을 신앙(믿음)으로 판단을 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은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당시에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정에만 흉년이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흉년으로 인하여 힘들어 할 때였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판단을 잘못하였습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믿음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베들레헴을 떠났던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은 하나님이 함께 거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나오미처럼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을 향하여 내려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연약한 우리들을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주님 안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판단과 의지로는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날마다 믿음으로 판단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세상 욕망의 끝 / 사무엘상 31:1~6 / 찬송: 493

사람들은 세상적인 욕망에 취해 자신에게 어떠한 엄청난 일이 벌어질지를 모릅니다. 세상 욕망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첫째, 하나님의 뜻을 떠나 불행을 초래하는 인생이 됩니다. 길보아 산에서 이스라엘이 패하여 사울 왕과 그의 아들들이 죽게 된 것은 사울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의 그 끝은 비참함 그 자체입니다.

둘째,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하는 사람들까지 멸망하게 됩니다.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진 사울은 이미 하나님을 버렸으며, 많은 군사들도 그들에게 다가오는 블레셋 군사가 무서워 도망갔습니다. 세상 욕망에 눈이 어두어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지도자로 인해 가족과 지인들까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 됩니다.

셋째,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끝까지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더 생각하다 죽은 사울과 자신의 직무를 다하며 끝까지 왕을 지키다 죽은 신하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다 죽는 성도는 그의 죽음조차 아름답다는 것을 마음에 되새길 수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항상 겸손한 믿음으로 자신의 욕심이 마음을 들쑤시지 않도록 성령의 소욕으로 강건하게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백해무익한 욕심으로 믿음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김응열 목사 / 군포평안교회

 

금요일 / 외형뿐인 신앙인이 되지 말라 / 아모스 4:1~13 / 찬송: 421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외형뿐인 신앙인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외형뿐인 신앙인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질의 복만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 물질의 복만 추구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고 억압하고 압제하고 착취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 한 것입니다. 당장은 그 삶이 형통한 것 같고 복 받은 삶인 것 같지만 결국에는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교회가 왜 욕을 먹고 있습니까. 신앙인들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에만 치우치지 말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는 신실한 신앙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신앙인들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해서 다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물질의 복만 추구하지 말고 형식에만 치우치지도 말고 회개할 줄 아는 신실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회개할 줄 아는 신실한 삶으로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정권 목사 / 주암햇빛교회

 

토요일 /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기까지 / 사무엘상 1:10~11 / 찬송: 623

한나는 기도가 운명이 된 사람으로 놀랍게도 하나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연약한 여인 한나의 태를 일부러성태치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서 매달린 딸에게 잔인할 정도로 아이를 안 주셨습니다. 시련의 폭풍이 더 거세게 몰아쳐도 안 주셨습니다. 기도가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안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한나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고통이 될 때까지 기도하던 한나는 드디어 자신의 기도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아들을 주시면 종으로 바치겠습니다며 서원하기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기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암울했던 사사시대에 잘난 남자, 잘난 성직자, 잘난 장로들 많았지만 하나님은 그들 대신 그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만을 구하는 한 여인, 즉 하나님 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던 한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한나 자신의 고통에서 출발한 기도가 주님의 이름의 영광을 구하는 서원의 자리로 승화될 때까지 주님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기도의 양이 찼을 때, 주님은 드디어 천하고 고통받는 한 여인의 그 작은 심령 안에 하나님 나라를 담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너무 더딘 것 같고, 너무 불합리해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도달하기 원하시는 대답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의 기도

오랜 기다림의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기도로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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