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을 훔쳐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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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훔쳐가지 마세요!”
  • 정석준 목사
  • 승인 2020.10.1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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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누가 또 화분을 가져갔네.”


한참을 공들여서 예쁜 도자기를 구해 분갈이 해놓은 것을 밤 사이 누가 집어갔다. 아내는 꽃을 좋아한다. 교회 안에 그녀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조금 과장하면, 주차장에 들어가는 무성한 나무숲과 여러 가지 꽃이 피어있는 길은 모두 그녀의 훌륭한 조경 작품들이다. 그러나 십자가 탑 아래서 쉬어가는 분들이 가끔 예쁜 것을 하나씩 들고 간다. 아쉬워하는 마음에 “꽃은 훔쳐가는 것이 아니야” 하고 위로를 건네지만 씁쓸한 표정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e)’이란 책으로 유명한 ‘에릭 프롬(Erich Fromm)은 뛰어난 정신분석학자요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또 다른 명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 그는 ‘소유형 인간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존재형 인간으로 살 것인가?’를 질문했다. 그리고 우리의 사회는 어쩔 수없이 소유지향과 이윤 추구하는 것을 중심 가치로 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열심히 벗겨내도 결국에는 알맹이를 만날 수 없는 양파의 모습처럼 인간의 욕망은 무한대이다.


‘탐심 욕심(desire), 정욕(lust)’을 일컫는 말에 헬라어 ‘에피뒤미아(epithymia)’가 있다. 그런데 원래 이 말은 선악을 판단하는 이원론 개념의 ‘두 마음’에서 파생됐다. 스스로 판단하고, 눈치를 보아가며, 약삭빠르지 않으면 좀처럼 살아갈 수 없는 삶의 현장이 사람들의 마음을 자꾸 갈라 탐욕을 내게 한다. 칼 막스도 이미 “많이 가질수록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The more have and the greater is your alienated life)라고 했다.


울산시 중구에서 “화분을 훔쳐가지 말라”는 경고문을 냈다. 고액의 예산을 들여 다리난간 등에 설치한 ‘그루백’이 통째로 사라지거나 그 속의 초화들이 유실되는 사건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다른 화분으로 빈자리를 채우며 말한다.


“여보, 각박한 세상에 교회 마당의 꽃이라도 가져다가 집안에 두어 평안할 수 있다면 감사합시다.” 다시 모든 꽃들이 일어나 미소 짓는 듯 하며 마당이 환하게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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