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 맛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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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맛의 추억
  • 송태호 원장
  • 승인 2020.10.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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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 송태호의 건강한 삶 행복한 신앙-36

명절날 부모님께 다녀왔다. 처가댁은 명철 연휴에 놀이를 가신다며 올 것 없다고 해서 본가 부모님께만 다녀왔다. 안타깝게도 본가 부모님 두 분은 각기 다른 질환으로 다른 병원에서 요양 중이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면회가 엄격히 금지되었고  면회가 허용되는 시기에도 내가 고위험군이기에 얼굴을 직접 뵌 지 오래된 형편이다. 즉 본가 부모님께 다녀오긴 했지만 명절이라고 해서 같이 식사를 했다거나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놀이를 했다거나 하진 못했다. 그래도 양가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니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우리 본가는 제사를 모시지는 않고 추도예배로 조상님들을 추모하고 새해를 축하한다. 아침 일찍 예배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추석음식을 싸들고 병원으로 가서 유리창을 앞에 두고 얼굴만 보면서 통화를 했다. 그 와중에도 부모님은 온통 자식 걱정뿐이다. 만약 두 분이 건강하셨다면 집에서 추석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니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의 가짓수는 이세상 어머니의 수 만큼이다”라는 말이 아니어도 우리는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에 대한 향수가 항상 있다. 같은 된장찌개여도 어머니가 해 주신 그 맛이 생각날 때가 있다. 명절음식은 푸짐하다. 음식이 귀했던 옛날에는 명절에 음식을 해 놓고 며칠동안 그 음식을 즐겼을 것이나 음식이 흔한 요즘도 남아서 처치 곤란할 정도로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한다. 

명절의 아침 풍경을 돌이켜 보면 아침식사부터 명절음식의 대명사인 전을 비롯한 한 상이 떡 벌어지게 차려졌고 개인마다 밥과 국이 커다란 대접으로 일인당 하나씩 준비되었다. 아침식사를 많이 먹지 않는 아이들은 커다란 대접을 받아 들고 이것을 어찌 다 먹나? 하는 표정이었다. 30대까지는 잘 모를 테지만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에만 해도 어른들의 밥그릇은 지금 식당 공기밥의 두 세배 정도 되었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한끼 식사량이 많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자식 손주들을 본 부모님의 정성까지 더해져 우리의 아침상은 항상 아주 거했다. 

서두른다고 했지만 8시가 훨씬 넘었기에 입맛을 다시며 김치를 입안에 넣었는데 ‘짜다!’ 내가 좋아하는 오이와 맛살을 무친 샐러드도 짰고 잡채도 짰다. 그나마 고기와 뼈 국물을 내어 아무 간도 안 한 국은 괜찮았는데 부모님은 거기에다가도 소금을 사정없이 뿌리셨다. 너무 짜게 드시는 것 아니냐는 내 말에 이게 정말 짜냐는 표정의 부모님을 보니 내 입맛이 잘못된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애들의 표정을 보아도 음식이 짠 것이 틀림없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체력뿐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각도 저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력,청력,근력 그리고 미각까지 점점 둔해진다. 이제 여든을 넘으신 부모님이지만 점점 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때 자식으로서 어찌 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데 우리집 반찬이 싱겁게 느껴졌다. 그만큼 짠 맛은 중독도 빠르다. 소금에 들어있는 나트륨은 우리 몸에 없어서도 안되지만 많을수록 해가 된다. 콩팥이나 심장,혈관에 무리를 주게 되어 몸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으로 시달리며 ‘약 힘으로 산다’는 어르신들에게는 독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이미 변해버린 입맛에 소금을 적게 쓰는 것은 어르신들의 식욕까지 떨어뜨려 영양결핍을 초래할 수 있으니 그것도 문제다. 소금을 적게 쓰면서 짠 맛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방법으로 소금 대신 간장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 외에 나트륨 함량이 적은 저 나트륨 소금도 있는데 여기에는 나트륨 함량이 적은 대신 칼륨 함량이 높아서 콩팥이 건강하지 못한 어르신들에게는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삼국시대의 명장 김유신은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도중 출전 명령이 떨어지자 집 앞을 지나며 집에 우물물을 길어오게 한 후 ‘우리집 물 맛이 변함 없으니 우리집에도 별 일은 없구나!’ 라며 집에도 들리지 않고 다시 전쟁터로 출정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과 따로 사는 경우가 많은 우리는 어머니의 음식이 짜다고 느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모를 때 부모님이 예전 같지 않게 늙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송내과 원장·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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