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율법의 원동력
만약 신앙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율법의 작은 부분이라도 깨닫지 못하는데, 목자에게 속한 양만이 주인의 음성을 아는 이치와 같다. 믿음 없이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을 순종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마치 물을 쟁기질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츠빙글리는 비유한다. 츠빙글리는 신앙의 상이성 때문에 우선 신앙과 율법을 동시에 설교할 것을 주장한다. 츠빙글리는 불신 정부를 억센 황소에 비유하기까지 하는데, 불신 정부에게 하나님 율법의 멍에를 달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도록 함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원동력이다. 신앙을 가진 자는 육은 비록 약하나, 율법을 지키는 일에 다른 자극이 필요 없는데, 신앙이 강하면 강할수록, 예외 없이 모든 율법을 순종하는 일에 흥미를 갖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이 죄의 늪에 깊이 빠져들수록 그들은 율법을 무시한다는 사실이다. 율법이 필요한 것은,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믿음을 설교해야 하지만, 죄악 때문에 결코 율법을 잊지 말아야 하며, 우리의 모든 행위를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장중에 맡겨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전환의 시대 온전히 무신론적 정부에 하나님과 인간의 마음에 흡족한 그 어떤 선행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폭정이라고 츠빙글리는 본다. 츠빙글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무신론적 정부가 만천하에 밝히 드러나는 것이다. 겉으로만 믿는 정부인 체 거짓으로 위장한다면, 그들을 공격하여 깨우치는 일도 언제나 잊지 않아야 한다.
유아세례는 할례의 자리에
츠빙글리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운 두 가지 성례인 세례와 성찬에 관해 아주 명확하게 밝히고자 한다. 당시 거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유아에게 물세례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관해, 츠빙글리는 상대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경에 근거하여 입장을 제시하며 설득하려 한다. 츠빙글리는 조금만 성경을 이해하면, 세례는 이미 믿음을 가진 자와 믿음으로 처음 나아올 자를 위한 거룩하게 구별하는 축성(Einweihung)이라는 것이다.
당시 대적자들은 믿음이 없는 자에게 세례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유아에게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일을 아주 소름 끼치는 일이며, 혐오스러운 짓으로, 지극한 신성모독이며, 참담한 행위로 믿음에 더러운 혈통을 부여하는 것으로까지 비난하였다. 이에 반하여 츠빙글리는 성경적으로 유아세례를 인정하며, 먼저 요한 1:26, 27을 가져온다.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세례 요한이 어떤 권한으로 물세례를 베풀었는지 하는 것인데, 요한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고로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러 왔노라.”(요 1:30-31)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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