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생명’ 살리는 전화 한통의 기적, 정말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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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생명’ 살리는 전화 한통의 기적, 정말로 일어납니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0.10.13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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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생명존중 실천하는 ‘한국생명의전화’

올해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유행이 반년 넘게 지속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과 장마까지 겹치면서 안 그래도 자살 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 쓴 대한민국에서 결국 경제적 고통과 우울·분노를 호소하는 자살 위기군은 크게 늘었다. 그야말로 국민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전문가들의 조언대로 심리방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같은 현실에서 주목 받는 단체가 있다. 36524시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한국생명의전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언제나 옆에 있는 얼굴 없는 친구를 자처한 한국생명의전화는 전화 상담 이외에도 자살예방과 유가족 돌봄 등에도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팬데믹 시대 비대면 상담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한층 더 어깨가 무거워진 한국생명의전화를 찾아가봤다.


전화 한 통, 목숨 살리는 최후의 보루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도움은 전화처럼 가까운 곳에라는 표어를 내걸고 달랑 전화기 2대로 시작한 생명의전화. 현재 20개 한강 교량에 총 75대가 설치된 SOS생명의전화를 비롯해 전국공통상담전화(1588-9191)와 사이버상담을 운영하며 소중한 목숨을 살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국내 전화상담 기관의 모태이기도 한 생명의전화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실은 민간단체다.

특히 생명의전화 상담 사례를 보면 그 시대상이 보인다고 할 정도로 그동안 생명의전화는 사회문제의 최전선에 있었다. 이는 생명의전화가 생긴 취지와도 궤를 같이 한다.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은 고도의 근대화 압축성장을 경험한 한국에서는 자연히 물질만능주의가 심화됐고 자살률도 함께 급증했다자살을 막기 위한 제1의 안전망인 가정은 점차 붕괴됐고. 대안이 돼줄 교회마저도 자살 얘기를 정죄하거나 금기시해왔다고 꼬집었다.

그나마 2018년부터는 국가 자살예방 행동계획이 발표되고, 보건복지부에 자살예방정책과가 신설됐으며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도 구성되는 등 정부의 움직임이 보다 활발해졌다. 이제라도 사회적 안전망이 보완된 데 반색을 표하면서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하 원장은 자살은 혼자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다. 자살 시도자들이 도와달라는 뜻으로 보내는 신호에 제때 응답해주는 건 지극히 당연한 기독교적 사명이자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생명의전화는 그간 생과 사의 기로에 선 수많은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안겨줬다. 지금까지 누적 전화는 105만 건을 넘어섰고, 위기상황 발생 시 119구조대 및 경찰과 연계해 생명구조 작업을 진행하는 SOS 생명의전화를 통해 이뤄진 자살 위기상담 또한 8,113건이었다. 이중 투신 직전의 고위험자를 구조한 건수는 1,595명이었다. 1998년부터 시작한 사이버상담을 통해서도 지금까지 32000여 명의 고민에 응답했다.

자살을 기도하기 이전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그들의 이야기를 신속하게 경청해주면서 전문기관에 의뢰해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합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답답한 마음에 수화기를 든 사람들은 양가 감정이 있어요.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죠. 이때 옆에서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준다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전화 한 통의 기적은 정말로 일어납니다.”

절실한 상담인력 확충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수화기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생명의전화가 44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단연 상담봉사원들이다. 모두 2년에 걸친 전문 상담교육을 받은 숙련된 봉사원들이다. 올해 7월까지 수료한 인원만 4,387명이라고. 얼마 전 누적 전화상담 4500시간을 넘긴 이시종 상담봉사원은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 줄 순 없어도 고민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겠다고 말해 감동을 줬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상담봉사원들의 상당수가 크리스천들이라는 사실. 이들은 철저한 비밀보장을 원칙으로 공감과 경청이란 상담 수칙을 엄격히 지켜나간다. “내담자와 별도의 연락 혹은 개인적 만남은 당연히 금지에요. 그래야 진실 된 대화가 이뤄질 수 있거든요. 우리는 그저 예수님의 사랑으로 강도 만난 자의 옆을 지키는 이웃일 뿐입니다. 사실상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초교파 단체라고 할까요.”

그러나 용기 내 전화했더니 연결이 어렵다는 하소연도 더러 있다. 쇄도하는 상담 요청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은 탓이다. 안 그래도 코로나 블루가 사회에 만연하면서 비대면 도움에 따른 봉사원들의 수요는 더 높아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예방 상담전화(1393)를 찾은 통화 건수는 한 달 평균 9,217건이었으나 올해 1월부터 8월까지는 월 평균 16,457건으로 78.6%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상담인력 확충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 원장은 생명의전화도 비슷한 실정이라며 자원봉사 수급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자원봉사의 특징이 자발성, 이타성, 그리고 무보수다. 실은 이곳 봉사원들도 다 자비량으로 교육을 받는다면서 안타깝게도 갈수록 이런 희생정신을 겸비한 봉사자들이 줄어들고 있다. 해마다 40~45명의 봉사원을 양성하는 것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교회와 시민들의 관심어린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사후관리 등 다각적 지원 꿈꿔
한편, 생명의전화는 학교나 기업에 나가 생명존중교육을 실시하고, 소방재난본부 및 법무부와 협약을 맺어 매년 자살예방교육도 시행한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34만 명이 넘는 청소년과 성인이 교육을 받았다. 하 원장은 전화나 사이버 상담 사역만으로는 자살을 예방하기에 역부족이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개개인이 제대로 된 자살예방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 일환으로 2015년 시작한 청소년 자살예방 교육사업 아이러브유는 조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전국의 중학교를 찾아가 학급별 수업을 진행한다. 자신과 친구의 강점을 재발견하고 친구가 보내는 자살 위험 신호는 어떤 것인지, 어떻게 친구를 도울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지금까지 1973개 중학교에서 334,315명이 참여했다. 국내 중학생 4명 중 1명이 교육을 받은 셈이다.

또한 생명의전화는 우리나라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2006년부터 생명사랑 밤길걷기캠페인도 펼쳐왔다. 매년 9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전후해 해질 녘부터 동틀 때까지 함께 걷는 캠페인에는 그동안 30만여 명이 동참했으며 수익금은 전액 자살예방사업에 사용했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비대면 생중계를 통해 전국 6,330명의 참가자가 한 자리에 모이는 대신 각자의 처소에서 5.8km, 11.5km, 26.6km, 37.5km를 선택해 동시에 걸었다.

이 거리는 각각 OECD 평균 10만 명당 자살률 11.5, 대한민국 10만 명당 자살률 26.6, 대한민국 하루 평균 자살자수 37.5명을 뜻해요. 그런데 이 코스를 혼자 완주하기는 힘들어요. 서로 의지하고 기도하며 응원해줘야 하죠. 그렇게 밤새 걷다보면 끝날 때 즈음 환하게 동이 터요.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어둠 속에서 내 힘만으로는 어렵지만 함께 헤쳐 나가다보면 결국 내일의 해가 뜨죠. 캠페인을 통해서는 바로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생명의전화는 자살유가족들을 품기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살로 인한 한해 유가족 수가 보통 9만 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일반인보다 자살 위험이 몇 배로 높아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에 생명의전화는 2011년부터는 자살유가족 힐링캠프를 개최, 한국생명의전화의 상담 및 자조모임에 참여해온 유가족을 대상으로 12일간 상담과 나눔, 우울증 해소를 위한 웃음치료 등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하 원장은 유가족들은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갑작스런 이별로 인한 상실감, 사회적 낙인 등으로 인해 충분히 슬퍼하거나 위로 받을 기회마저 잃은 채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다이 같은 감정을 정신질환으로 치부하는 우리 사회에서 유가족들은 한 순간에 자살 고위험군으로 빠질 수 있다. 체계적인 관리로 유가족들이 하루 빨리 아픔을 털어내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어쩌면 자살예방의 첫 걸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끝으로 그는 생명의전화가 자살예방과 관련, 총체적인 지원·대책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했다. “가끔, 실직이나 폐업 등 심각한 경제난으로 다시 일어설 엄두도 못내는 이들을 상담할 때면 일일이 다 보살필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이런 사람들에게 사후 관리나 전문기관 의뢰, 교육, 재취업 과정 등을 연계해줘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생명의전화가 향후 이 같은 종합상담·지원센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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