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비판적 비유는 곧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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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비판적 비유는 곧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10.13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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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33) - “누가 보입니까?”(잠 26:1~28)

잠언 전체를 통틀어서 26장만큼 통렬한 인물비평은 찾기 어렵습니다.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3절), “개가 그 토한 것을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11절),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15절),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17절)

강렬한 이미지에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미련둥이, 게으름뱅이, 사고뭉치, 실없는 자, 사기꾼, 아첨꾼 등 부정적 인간상을 총망라한 촌철살인의 잠언들을 읽고 있으면 눈앞에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미련한 자가 명예를 갖는 것은 한여름에 눈이 내리고 추수 때 비가 오는 것과 같다니(1절). “내가 아는 그 아무개에게 딱 맞는 말씀이로군.”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긴다(16절) “이번 우리 부서 신입 얘기네. 정말 기막힌 표현이야.”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20절) “박 대리 지난번에도 말 옮겨서 시끄러웠지 참 사람이 입이 가벼워서 원.” 이런 생각을 하는 우리가 특별히 사악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 구절들이 콕집어 말씀하는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22절을 읽으면 무언가 걸리는 게 있습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22절)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만큼 그 말을 별식처럼 즐기고 뱃속 깊이 넘기는 사람이 있으니, 그건 누구입니까.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23절) 말은 점잖은데 속은 음흉한 사람은 뚝배기에 은도금을 씌운 격이랍니다. 참 한심한 사람인데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 지라도 믿지 말 것은”(24~25절)이란 말씀을 보면 그런 사람의 허접한 말을 믿어주는 사람 역시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없는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악합니다. 그 말을 들어주고 전하는 사람은, 역시 악합니다. 수요 없는 곳에 공급이 있을 수 없기에 거짓말의 생산자와 전파자는 본질상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잠언 26장은 누군가를 풍자하는 글이면서 곧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실린 프로파일들을 보며 한심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내 모습일 수 있다는 두려움과 그게 바로 나로구나 하는 자각이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27절)는 말씀이 자신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살면서 나를 넘어뜨린 걸림돌이 어떤 나쁜 놈이 놓아둔 게 아니라 자신이 던져뒀던 바로 그 돌이라니, 이 무슨 희비극입니까. 그런데 살아보니 그 말씀이 정말 진리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의 버거움을 놓고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팠던 함정, 자신이 치우지 않은 돌이 스스로를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역사 속의 사건들만이 아니라 삶의 관찰을 적은 지혜의 말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 자부하지 말고 스무 여덟 절에 걸쳐 묘사되는 부정적 모습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라는 것이야말로, 얼핏 보면 긍정적 메시지나 문제의 해답을 주지 않는 26장의 궁극적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이는 미련한 이들조차도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보다는 가능성이 있으니 말입니다(12절).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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