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 사태 계기로 본격 활동…"교회와 사회 소통 돕고파"
2012년 설립 '라이프호프' 통해 자살예방, 지난해엔 장관상 받아
현상에 대한 분석기사를 쓰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 있다. 사안에 대한 해석을 전문가의 입을 통해 내놓기 위한 ‘코멘트 받기’다. 근 10년간 교계 언론에서 가장 많은 코멘트를 남긴 전문가를 꼽으면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실천신학대학원의 조성돈 교수(목회사회학)다.
조 교수 만큼 목회적 관점에서 사회를 해석하면서 교회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을 견지하는 이가 흔치 않다는 게 많은 교계 기자들의 평가다. 매체의 성격을 뛰어넘어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조 교수의 시각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와 많은 통화를 했지만 정작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조성돈 교수를 만나 그의 신앙과 삶에 대해 들어봤다.
계기가 된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조성돈 교수는 중학교 1학년 무렵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 기도 가운데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목회자가 되는 것이 너무 싫어서 “하나님한테 기회 주자”는 생각으로 교단 신학교가 아닌 연세대 신학과로 진학했다. 스스로 볼 때 목사로서 자격 없다는 마음이 컸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목사가 될 만한 사람이 되면, 그 때 안수를 받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유럽 유학생 선교회인 ‘코스테’ 총무를 10년간 맡아서 했는데, 조 교수는 “이 과정에서 훈련을 받은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전도사 10년 만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2002년 말 공부를 마치고 유학생활 13년만에 한국에 돌아왔고 2005년에는 실천신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2년이 지났을 무렵 ‘아프간 피랍 사태’가 터졌다. 지금까지도 한국 개신교 안팎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는 이 일이 벌어졌을 때, 교회의 시각을 세상에, 세상의 시각을 교회에 전달하는 역할이 필요했는데 그가 적임자였다.
“아프간 피랍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교회가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교회도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지요. 그 전까지만 해도 목회자들에게 ‘시민’자만 꺼내도 ‘빨갱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니까요. 사태 후에는 교회들 스스로도 ‘우리가 고립돼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시작했고, 제가 참여할 공간이 생긴 겁니다.”
사태 후 13년, 교회는 어떻게 변했나
그렇다면 조성돈 교수가 바라보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13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달라졌을까. 조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양극화’라는 단어로 답했다. 한쪽에서는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진 교회들이 생겨났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진보정권을 겪으며 교회가 사회에 저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
조 교수는 미국에서 아들 부시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절을 언급하면서 “당시 미국에서 복음주의권의 정치참여가 활발하게 이어졌고, 국내에서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보수교단들이 갑자기 정치와 사회참여에 적극성을 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8년에 일어난 종교편향운동이 이명박 정권에서 하나의 프레임으로 작용한 것처럼 교회와 사회가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것. 조 교수는 이러한 움직임이 계속되면서 최근 코로나19 상황에 이르러서는 심각한 교회의 위기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암담한 것은 교인들이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주일학교 부장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한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자체가 아이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뜻입니다. 학교에 가면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직접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죠. 뿐만 아니라 학부모인 30~40대 젊은 사람들도 교회에 나오기 싫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데, 그 기저에도 자부심의 상실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들이 잃어버린 교회의 권리를 찾겠다고 하는데, 교회가 다 무너진 이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더 이상 교회가 반사회적인 집단으로 자리매김해서는 안 됩니다.”
조 교수는 아직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지점으로 ‘영성’을 꼽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경영학에서 마음의 평안을 위한 묵상 등 영성과 관련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조 교수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영성과 기독교 영성은 조금 다르지만 세상이 영성이라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문제는 교회가 이것을 해줄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생명의전화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코로나19가 닥치면서 많은 이들이 ‘인생’과 ‘삶의 목적’의 문제를 놓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음이 나타났다”며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고싶다’는 말을 한다. 교회가 가야할 길이 여기 있다. 단순히 기도 뿐 아니라 영성이라는 큰 그림을 세상에 심어줄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살의 문제,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
조 교수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기독교 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에 관한 이야기로 흘렀다. 그는 2008년 ‘그들의 자살 그리고 우리’라는 책을 펴낸 뒤 2012년 라이프호프를 설립했고, 2019년부터는 대표직을 맡아 자살예방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엔 이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목회사회학을 전공한 그가 자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교회가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영역이 뭘까 고민하다보니 우리 사회의 심각한 자살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교회가 뭘 해도 욕을 먹는데 ‘생명’과 관련해서는 세상도 ‘교회의 일’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주더군요. 특히 유가족을 만날 때 이 문제가 교회가 나서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민간 행사에 참여하면 믿지 않는 유가족들이 찾아와서 ‘목사님’ 하며 반겨줍니다. ‘목사’라는 직분 덕분에 그들과 쉽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자살 예방 사역을 하면서 ‘목사하길 잘 했구나’하는 보람을 새삼 느낍니다.”
그러나 그의 자살예방 사역이 환영만 받은 건 아니다. 2009년 책을 발표한 뒤 “자살한다고 지옥 가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 했다가 교계의 강력한 질타를 받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자살은 곧 지옥’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했던 기사에는 악플이 수도 없이 달렸고, 휴대전화 문자로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고, 지금은 한국교회에서 자살자에 대한 장례식을 집례해주는 것이 많이 보편화 됐다. 특히 지난 2014년 예장 통합 제99회 총회에서 자살자에 대한 목회지침서를 만들어달라는 헌의가 통과했고, 이듬해 100회 총회에서 공개됐다. 목회지침서에는 부록으로 자살자를 위한 장례예식서도 포함됐다.
“교단 입장에서 우리는 자살자에 대한 장례를 치러주겠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개신교의 기본 교리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겁니다. 희대의 살인마도 마지막에 회심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어떤 죄도 지옥 간다고 말하는 죄가 없는데, 자살에 대해서만 유독 지옥 간다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보실때 구원 받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조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최근 한국교회를 보면서 오늘날의 어려움을 어떻게 버티고 살아나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걱정된다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존폐의 위기라는 절박함이 필요하다”면서 “그걸 얘기할 수 있는 제 위치에 감사하다.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