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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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다
  • 노경실 작가
  • 승인 2020.10.06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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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109

마태복음 18:8>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격이 오래되자 지친 나머지 가정마다 긍정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중 하나가 정리하기, 청소하기, 더 나아가 ‘버리기(taking out the trash)’이다. 

집에만 있다 보니 하나 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해서 일 것이다. 말이 쓰레기이지 사실, 이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나름 소중하거나 쓸모 있다고 생각한 물건들. 내가 갖고 있기에는 좀 그렇지만 남 주기는 약간 아까운 것들(어떤 사람들은 자식이나 남편이 그런 존재라고 농담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일 년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쟁여주고 있는 것들. 누가 준 선물이라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창고에 쳐 박아둔 물건들.  

이런 것들이 진저리 날 정도로 지겨운 이 시간 속에서는 말 그대로 ‘쓰레기’처럼 여겨져서 버리고, 집을 수리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래서 지난 7월 말부터 정말 무엇에 홀린 듯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사 온 뒤 단 한번도 살펴보지 않은 베란다 구석부터 시작해서 넓지도 않은 집이지만 샅샅이 청소를 해나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쳐 박아둔’ 온갖 물건들이 -특히 사진, 편지, 각종 인쇄물, 책과 잡지, 작은 소품들, 쓰지 않은 생필품들 등등- 숨어 있던 바퀴벌레들처럼 우글우글 쏟아져 나왔다. 그 외에도 10년 넘게 보지도 않는 벽걸이 텔레비전을 치우는 것과 씽크대 배수구를 교환하고, 화장실 환풍기와 거울을 바꾸고 하는 것은 대공사였다. 아직도 도배와 장판작업이 남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잘 때마다 극한 노동자들처럼 ‘에구...음음..아이구...’하는 신음 소리를 한참동안 한 다음 잠에 든다. 평생 책상 앞에 앉아 글만 쓰는 몸이라 더 엄살이 오르는 것 같다.

구석구석에서 꺼낸 물건들 중 박스 안에 잘 보관되어 있어서 약간 변색은 되었어도 상태가 좋은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렇게 변하거나 먼지가 푸욱 내려 앉아 있었다. 미리 말하지만 혼자서 대청소를 하느라 지금 내 열손가락의 손톱은 다 닳아서 무언가에 닿으면 아플 정도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얻은 것도 많다. 집안 수리하는 법, 전기나 수도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었다. 정리와 청소에 대한 방법과 필요한 물품에 대한 다양한 상식도 알게 되었다. 또한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작가로서는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유익이 있었다. 그것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특이한 사람이 있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집안 곳곳에서 온갖 사진, 편지, 각종 인쇄물, 책과 잡지, 작은 소품들이 발견될 때마다 먼지 속에 잠시 앉아 펼쳐보고, 읽고 한다. 물티슈와 키친타월로 먼지를 닦아내며....

사진 한 장 한 장을 보고. 편지 한 줄 한 줄을 읽고. 수많은 종류의 인쇄물과 잡지들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고. 많은 사람들과의 사연이 담긴 소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그런데 보고, 읽고, 다시 보고 읽을수록 눈에 보이는 먼지는 깨끗이 닦아지는데, 그 물건들과 내용들에 담긴 나의 잘못과 실수, 욕심, 과장된 것, 아부, 허영심, 교만과 오만, 거짓말과 임기응변, 변명과 모면, 어리석음과 아둔함, 비겁함과 졸렬함, 유치함과 천박함, 성급함과 조급함, 누추함과 비굴함, 겁먹음과 우쭐댐, 눈가림과 뻔뻔함, 속임과 알고도 속음, 두려움과 억울함, 서운함과 배반감, 열등감과 위선, 눈속임과 도망침 등등은 더 선명하고 확실하고 크고 굵고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서면 무조건 구속감이다. 눈 하나 빼내고, 손 하나 잘라내고, 다리 하나 부러뜨리고, 간 하나 꺼내서 사면 받은 일이 아니다. 내 지난 온 흔적들마다 어찌나 먼지가 더덕더덕 눌리고 눌려서 들러붙었는지 털어도 먼지가 안 날 정도이다. 김용의 선교사님의 표현처럼 ‘죄의 짱아찌!’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음과 금을 주시고, 먹을 것과 기름과 향을 주시며, 수많은 영의 자식들을 주셨다. 주시고 계신다.(에스겔 16장) 왜? 

힘내서 털어도 먼지 안 날 정도로 정신없이 죄 짓고 다니라고? 

아니다!

아니다!

당신 자식이라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번더 ‘더운밥’으로 밥상을 차려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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