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의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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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시대의 예배
  • 조성돈 교수
  • 승인 2020.09.1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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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코로나19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다. 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이후 병행하게 될 때도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다. 불과 몇 주면 우리는 다시 예전과 같이 다 같이 모여서 예배 드릴 줄 알았다. 전에도 전염병이 돌았던 적이 있고, 그 독하다는 독감이 돌아도 예배는 드려졌고, 충실한 우리 교인들은 항상 그렇게 예배에 왔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제 7개월이 넘어가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일이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지난 7월만 해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가 잡혀가는 듯했고, 우리의 일상도 돌아올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8월에 들어와 갑자기 확진자들이 늘어나면서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일이 이것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언제 나올지 모를 치료제와 백신이 완전히 보급될 때까지 이러한 일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상이 지속되면서 우리 교인들도 적응해 나가는 것 같다. 이번에 비대면 예배로 전면 전환될 때도 마음의 실망은 컸으나 어려움은 없었다. 그냥 또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보다 하는 일상의 경험이었다. 이제 조그만 화면을 통해 드리는 예배에 빠져들고 있다. 분주했던 주일의 풍경은 사라졌고 차분한 마음으로 주일예배를 기다리는 것이 새롭다.

주일 아침이면 늦잠의 유혹을 이기고 일어나서, 아이들 챙기고, 내 자신 챙기고 주차전쟁을 치르며 교회당까지 들어가는 것도 큰 일이다. 거기에 교회당에 들어가 가족이 모두 자신의 예배 자리를 찾아가기까지도 쉬운 일은 아니다. 또 교회에서 직분과 봉사로 분주해지면 가족의 자리는 전쟁과도 같다. 어른들이 봉사할 때 아이들은 교회당 여기저기서 유리방황한다. 심지어 그리 크지도 않은 교회에서 서로 마주칠 때면 반갑기까지 하다. 주일예배는 항상 만원이다. 옆 사람과 몸이 닿고 입냄새가 코에 닿는다. 그의 기도에 내 기도가 엉키고, 그의 분주함이 내 마음을 흩트린다. 그 가운데 예배에 집중하고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예배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한다. 한 공간에 모이지 않을 때 온전한 예배가 드려지겠느냐를 묻는다. 그런데 그건 젊은 세대를 이해 못하는 생각이다. 요즘은 개인 미디어 시대이다. 과거 우리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았다. 그게 당연했다. 불 꺼진 극장에서 훌륭한 사운드로 영화를 볼 때 경험하는 몰입감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홈씨어터가 유행했다. 대형 화면을 가진 TV에 서라운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오디오 시스템이 연결되면서 굳이 영화관을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홈씨어터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굳이 그렇게 가족이 모여서 영화를 보려고 안 한다. 그 자리에 핸드폰이 들어섰다. 이런저런 장비가 필요 없다. 핸드폰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순간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콘텐츠가 들어온다. 작은 화면이지만 나만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문제가 없다. 거기에 이어폰을 꽂으면 사운드는 최고다. 몰입도로 치면 영화관보다도 홈씨어터보다도 더 좋다.

예배라고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영화관과 홈씨어터를 거쳐 핸드폰으로 옮겨온 이 세대에게 예배당에서 드려야만 한다고 하는 것은 그 의미가 없다. 이미 예배도 영상과 방송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익숙한 환경을 계속 제공해 왔다. 인제 와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제 우리가 기도할 것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핸드폰을 통해서 임재하시길 바라는 것일지 모른다. 이방의 나라를 통해서도 그 뜻을 펴신 하나님이 이제 새로운 땅에서 그 영광을 드러내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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