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다섯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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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다섯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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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2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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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더 이상 방황 없는 인생 / 누가복음 15:11~24 / 찬송: 370

탕자에 대한 말씀은 불신자들도 잘 알고 있어 자주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신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합니다. 당신은 이미 주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 믿음의 사람이기에 주님의 비유를 삶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또다시 세상 즐거움과 육신의 정욕과 쾌락을 동경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지내는 것이 좋게 여겨지거나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전에 즐기던 옛 사람의 삶을 끊고 새롭고 거룩한 구별된 삶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다시는 세상을 뒤돌아보며 영적으로 탕자가 되어 방황하지 않아야 합니다.

영적인 방황은 믿는 자신에게 엄청난 손실과 아픔을 가져옵니다. 이는 영적인 재산을 낭비하는 것으로 결국은 영적으로 무능해지며 궁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날이 갈수록 영적으로 부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믿는 자에게 다시 세상으로 나오라고 유혹하며 손짓합니다. 잠깐 한때뿐인 인생을 즐겨보라고 충동질하며 손을 잡고 끌어내려고 합니다. 딱 한 번만 맛보라고 달콤하게 눈짓하며 세상으로 불러냅니다. 이럴 때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는 방황이 없다고 단호하게 선포하십시오. 스스로 다짐하며 주님의 손을 꼭 잡으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방황하여 영적으로 궁핍하지 않도록 아버지와 늘 함께하게 하옵소서.

최도경 목사 / 송탄평화교회

 

화요일 /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 / 창세기 28:10~19 / 찬송: 384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에게 주어지는 형 에서의 축복을 받아낸 야곱이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는 중에 해가 져 한 곳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엄청난 복을 약속하셨고 이에 야곱은 서원하여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짓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사실 하나님께로부터 이러한 복을 받을 만큼 잘 한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도망가는 길입니다. 이러한 야곱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그의 잘못된 일에 대한 추궁이나 꾸중은 없으시고 야곱의 선조인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복을 반복해서 확인시켜 주십니다.

야곱은 분명히 복을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지금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기독교와 세상의 일반 종교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이 차이점을 보여주기에 우리는 이 차이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듯이 못난 인간들을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며 기어코 하나님만이 주인이시며 복의 근원이 되시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받아내십니다.

야곱을 찾아오셔서 약속하신 이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신앙의 근거이며 담대함이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의 약속입니다.

오늘의 기도

못난 우리를 택하셔서 하늘의 기업을 주신 하나님, 험난한 세상을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으로 승리케 하옵소서.

정종현 목사 / 신애교회

 

수요일 / 진리냐? 사실이냐? / 요한복음 8:32 / 찬송: 276

인간의 삶은 두 방향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진리를 좇는 자들과 사실을 좇는 자들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따라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지며 사실에 입각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합니다. 그러기에 사실은 언제나 거짓을 동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2)는 말씀은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 부자유한 상태에서 살아가던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므로 죄에서 해방 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실대로 살아서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 있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6:22)

교회의 일꾼들은 진리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아서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오늘의 기도

진리를 따라 믿음의 백성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은혜 다음 이루심 / 여호수아 5:10~12 / 찬송: 347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의 소산을 먹었다는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충실히 이행되어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백성들과의 언약을 어떻게 이루시고 있는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은혜 다음 이루심. 첫째, 가나안에서 지킨 첫 유월절이 하나님의 은혜와 이루심의 증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킨 것은 새로운 구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둘째, 가나안 땅에 소산물을 준비해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이루심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유월절을 지키기에 풍부한 곡식들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앞날을 미리 아시고 준비를 철두철미하게 하십니다.

셋째, 광야에서 먹은 만나가 그침은 하나님의 은혜 다음 하나님의 이루심입니다. 만나가 그저 자연적 현상으로 내렸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에 의해서 내린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필요로 하였을 때는 내려 주셨고, 시간이 지나자 식량을 일상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을 때 초자연적인 방법의 만나가 그쳤습니다.

우리의 인생,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쓰러지고, 넘어지며 실패하던 우리들을 변함없는 사랑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루어주심에 감사합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작은 자로 이루심이 되게 하소서.

김응열 목사 / 군포평안교회

 

금요일 /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 시편 73:1~28 / 찬송: 338

본문을 통해서 시인은 처음에 불평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불평을 지나 깨달음과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회개에서 다시 영광스러운 신앙의 고백을 하는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정말 중요한 축복과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에서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자리에 머물러 계십니까? 아니면 거기서 떨쳐 일어나 깨달음, 곧 하나님의 교훈을 얻습니까?

우리가 누릴 축복이나 영광은 있다가 없어져 버릴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점점 더 영광스러움을 경험하고 누리게 될 최고의 영광과 최고의 축복이 하나님의 임재라는 사실을 아는 성도는 언제라도 하나님의 하늘 성소에 들어갈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오늘 단 하루만을 남겨놓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은혜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은혜는 짐승 같은 수준의 본능적 불평과 원망에서 우리를 건져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로부터 다 떠나갈 때 우리가 평생 붙잡고 있던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이를 때 우리는 알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분복이며 성도의 영광이고 최고의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불평과 원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심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며 성도의 영광이고 최고의 축복임을 알게 하옵소서.

정권 목사 / 주암햇빛교회

 

토요일 / 처음 사랑 / 요한계시록 2:4 / 찬송: 314

신앙생활이 깊어 갈수록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점점 더 절감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평생에 기도하리로다”(116:2)라고 고백합니다. 바쁘기로 치자면 왕보다 더 바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윗이 다윗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인생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그가 평생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평생을 두고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 매일 하나님께 집중된 기도를 합니까? 지금처럼 아무리 암울한 상황일지라도 부르짖어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며 역사하실 것을 안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아마 예수님을 향한 미지근한 사랑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매일 주님과 홀로 귀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가볍게 여기고 살아갑니다. 지금 조국 교회의 현실처럼 실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을 누리는 사람은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마치 사자굴 앞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과 더 이상 사랑의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기도 없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더 깊은 절망에 빠지며 점점 더 육신을 의지하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주님과 더 친밀한 사랑을 유지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가 되게 하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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