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의 편지들 비텐바흐에게, 1523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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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의 편지들 비텐바흐에게, 1523년(1)
  • 주도홍 교수
  • 승인 2020.08.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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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102

츠빙글리는 1523년 6월 15일, 스위스 비엘(Biel) 출신으로 비엘 종교개혁자 토마스 비텐바흐(Thomas Wyttenbach, 1472~1526)에게 성찬에 관한 아주 의미 있는 편지를 보냈다. 

비텐바흐?
비텐바흐는 1496년부터 1504년까지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인문학과 신학을 공부하여, 1498년 문학사, 1500년 문학석사, 1504년 성경학 석사를 취득했다. 1505년 비텐바흐는 바젤대학교로 옮겨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에게도 영향을 준 인물 롬바르트(Peter Lombard, 1096~1160)의 문장론을 강의하였다(Sententiarius). 1505/6년 학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 중에는 츠빙글리와 유드(Leo Jud, 1482~1542)가 있었는데, 그렇다면 비텐바흐와 츠빙글리는 사제지간이라 하겠다. 비텐바흐는 1507년 비엘의 시 교회로부터 목회자(Leutpriester)로 청빙을 받아 목회하였다. 1515년 비텐바흐는 신학박사가 되었다. 1515년부터 베르너 강변 뮌스터(am Berner Muenster)에서 설교자와 성가대 책임자로 일하던 중, 1520년 고향 비엘로 돌아와 목회하였는데, 1523년 6월 15일 츠빙글리가 보낸 바로 이 편지 답장에서 가톨릭교회의 화체설을 부인하였다. 그는 1524년 여름 결혼했는데, 이로 인해 비엘 시 교회에서 쫓겨났다. 그렇지만 비텐바흐는 비엘 요한 교회로 옮겨 계속 설교하였는데, 가난한 목회자로 살다 1526년 54세로 세상을 떠났다. 

편지 서두에서 츠빙글리는 비텐바흐를 “아주 경건하고 깊은 학식을 가진 토마스”로 묘사한다. 비텐바흐가 아주 오래전 츠빙글리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츠빙글리는 이제껏 답을 하지 못한 무례를 기억한다. 그러던 중 본의 아니게 비텐바흐와의 관계가 멀어졌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츠빙글리는 송구한 마음에도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편지를 쓸 수 있었는데, 비텐바흐의 친절함과 그리스도적 사랑을 기억하면서이다. 

 

믿음으로 받는 성찬 
츠빙글리는 편지에서 비텐바흐에게 성찬에 관한 본인의 입장을 털어놓는다. 성찬에 관한 츠빙글리의 생각은 완벽하지 않음을 알기에, 비텐바흐의 도움이 절실함을 츠빙글리는 숨기지 않는다. 알고 보면, 둘 사이는 선생과 제자 사이가 아닌가. 그럴지라도 츠빙글리의 언어는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고, 확신에 넘치는 성찬에 관한 이해를 신앙을 고백하는 듯하다. 

“성찬은 신앙이 있는 현장에서 배설되어야 함을 나는 믿습니다. 성찬의 목적은 분명한데, 주가 다시 올 때까지(고전 11:26), 주의 죽음의 열매, 그의 은혜, 그의 선물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 성찬의 빵은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다르게는 절망 가운데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용기를 주고, 포도주는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렇지만, 신앙이 없는 곳에서는 그 어떤 힘과 기쁨도 주지 않고, 사람의 영혼에 도리어 해와 병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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