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제빵 기술이지만 나누면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됩니다”
상태바
“작은 제빵 기술이지만 나누면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됩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0.08.11 1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탐방-선교하는 빵집 ‘바보 찐만도’

동대문운동장에서 ‘사랑의 빵’ 나누던 한만호 목사 운영
10년 전부터 선교사 지망생 및 개척교회 위한 교육 진행
극적인 하나님의 인도 속에 ‘선교’ 및 ‘자립’ 모델로 발전

천안시 동남구에서 위치한 작은 빵 가게 ‘바보 찐만도’는 최근 ‘자립 모델’로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새롭게 개업했다. 대표인 한만호 목사는 그간 ‘찐만도’라는 이름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가게를 차리도록 도왔다. 한 목사는 선교사뿐 아니라 개척교회 목사 등 사역에 돌파구가 필요한 이들에게 ‘바보 찐만도’가 생존을 위한 동아줄의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천안시 동남구에서 위치한 작은 빵 가게 ‘바보 찐만도’는 최근 ‘자립 모델’로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새롭게 개업했다. 대표인 한만호 목사는 그간 ‘찐만도’라는 이름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가게를 차리도록 도왔다. 한 목사는 선교사뿐 아니라 개척교회 목사 등 사역에 돌파구가 필요한 이들에게 ‘바보 찐만도’가 생존을 위한 동아줄의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천안시 동남구에 위치한 작은 빵 가게 ‘바보 찐만도’. ‘찐만두’를 잘못 쓴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찐빵’과 ‘만두’, ‘도너츠’의 앞 글자를 뗀 이름이다. ‘찐만도’ 앞에 붙은 ‘바보’라는 수식어는 이 집이 바보처럼 나눠주기를 좋아한다는 뜻과 하나님만 ‘바라보는 집’이라는 두 가지 뜻을 품고 있다. 

이 곳은 IMF 외환위기의 여파가 그대로 남아 있던 지난 2000년부터 서울의 동대문운동장 인근에서 노숙인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사랑의 찐빵’을 나눠주던 한만호 목사가 최근 개업한 가게다. 올해 예순 여섯의 한 목사는 원래 건설업을 하다가 30여 년 전 큰 실패를 겪은 후 ‘찐만도’를 시작했다. ‘사랑의 찐빵’을 나눈 지 3년이 되던 해 하나님의 강력한 이끄심을 따라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는 교회 사역이 아닌 ‘찐만도’를 통한 선교와 복지 사역에 인생을 걸었다. 

비가 많이 내리던 7월의 어느 날 한 목사와 ‘찐만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천안의 ‘바보 찐만도’를 직접 찾아가 봤다. 

 

강력하게 이끄신 하나님

한만호 목사는 서울 을지로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근처의 영락교회에 출석했다. 교회 문턱을 오갔지만 진정한 회심을 한 건 40대 초반이던 1995년 무렵이었다. 이후 사랑의 찐빵 사역을 하며, 목사 안수를 받고, 한기총과도 파트너십을 맺어 사역의 외연을 넓혔다. 2005년에는 파키스탄에서 큰 지진이 발생해 한기총 소속으로 현지 봉사에 나서게 됐다. 3개월 넘는 시간 동안 현지에서 빵을 만들어 나누는 일을 했는데, 돌아오고 나서 탈이 났다. 당 수치가 500이 넘게 올랐고 시력이 약해져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7년 동안 동대문운동장에서 봉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내용이 ‘하루만 쉬게 해 달라’는 것이었거든요. 파키스탄에 다녀온 이후로 정말 쉴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그길로 모든 것을 다 접었습니다. 정작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자 마음 속에서 ‘하나님 이게 뭡니까’ 하는 원망이 일어나더군요. 그런데 하나님께선 ‘너, 나한테 쉬게 해달라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잠만 잤습니다. 그러자 회복이 되면서 시력도 서서히 돌아왔지요. 아내에게 돋보기 큰 것 하나 달라고 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때 봤던 성경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어요. 한 달 정도 희미하게 보이더니 완전히 나은 뒤에는 이후 진로에 대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휴양차 강원도로 향한 한 목사 내외. 양구를 지나는데 ‘임대’라고 쓰인 글자가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한 교인이 하던 가게였는데 무작정 들어가 “당장 돈이 없는데 임대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감사하게도 허락이 떨어졌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게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인테리어는 언감생심, 내부를 하얀색 페인트로 칠하는 게 전부고 간판도 3만 원짜리 인쇄로 대강 했다. 

설비도 최소한의 장비만 있었는데, 그때 평소 알던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성도들이 교회에 빵·만두 만드는 설비를 해놨었는데 방치된 채 처치 곤란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덕에 바로 다음 날부터 ‘찐만도’ 간판을 달고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위해

양구에서 1년 가량 장사를 하면서 자리를 잡을 즈음 주변의 군부대 사단 목사님이 한 목사를 찾아왔다. 연대 교회 목회자가 공석인데 맡아달라는 부탁에 한 목사는 1년간의 휴식을 마치고 군 사역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게 됐다. 

그때의 사역이 지금의 ‘바보 찐만도’를 이루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군 사역을 시작한 뒤 선교사가 꿈이라는 장병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그들에게 “어떤 도구를 가지고 선교지에 나가고 싶느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후원’ 받아서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한 목사는 그런 장병들에게 ‘빵’ 만드는 방법을 배워보라고 권했다. 자비량 선교가 가능할 뿐 아니라 대부분 개발도상국인 선교지에 기술을 가르쳐 자립시킬 방법도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제자를 배출했고,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교육을 위해 아예 공장까지 차렸다. 

이후 천안으로 오면서 더욱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됐다. 선교사 지망생뿐 아니라 개척교회 목회자들까지 ‘비즈니스 선교’(Business As Mission)의 모델을 접목하기 원하는 이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프랜차이즈로 창업까지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이면 선교사 지망생과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바보 찐만도’에 모여 빵 기술을 배운다. 수강료는 재료비 정도로 최소한만 받는다. 선교사는 10만원, 개척교회 목회자는 20만원이다. 이 사역도 어느덧 10년째에 접어들었다. 

“최근에 다녀간 베트남 선교사 부부는 기술을 배우고 무척 고무되어서 돌아갔어요. 빵 만드는 합판 하나, 솥 1~2개면 충분히 어느 곳에서든 장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맛은 기본이고, 직접 개발한 고급 기술까지 짧은 시간 안에 배워갈 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께 충분한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한 목사와 친분을 나누며 동역하고 있는 백석대 기독교학부 이종우 교수(선교학)는 한 목사와 선교 지망생인 제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이 교수는 “한 목사의 탁월한 노하우와 나눔의 삶을 보고, 제자 선교사들과의 연결을 주선했다”며 “선교사 파송이 어려워지는 최근의 상황에서 자비량 선교가 요구되며, 선교현장에서 고용창출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이번 두 차례에 걸친 선교사 및 선교사후보생들을 위한 제빵 노하우 전수는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물질 후원도 귀하지만 한만호 목사처럼 크리스천 기업인들과 기술자들이 노하우 전수에 동참한다면 지속적인 자립선교를 가능하게 하여 선교 활성화와 도약의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진행된 선교사 지망생 및 선교사 제빵기술 교육.
최근 진행된 선교사 지망생 및 선교사 제빵기술 교육.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모델 되길

한 번은 한 목사가 천안시 주최 자살예방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경제적 이유로 인한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한 목사는 경제적 문제로 어려운 이들은 자신에게 찾아와서 배우라고 말했다. 

이후 실제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청하며 ‘바보 찐만도’를 찾아왔다. 한 목사는 “다른 곳에서는 일을 시키려는 계산으로 천천히 가르치면서 한 달 넘게 교육 기간을 가져가기도 한다”며 “여기서는 일주일이면 가능하다. 더 배우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지 와서 같이 만들어도 되고 집에서 연습해도 된다. 나도 어려울 때 이 기술을 배워서 살아났다. 배우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는다. 누구도 돈 때문에 죽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당시 발언의 취지를 설명했다.

바보 찐만도에서는 가르치는 일뿐 아니라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먹이는 사역도 진행된다. 천안 동남부의 동부 6개 면에 150개의 노인회관에 빵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직접 나눌 수도 있지만 지역 교회들이 빵을 통해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나누는 일은 교회들에 이양했다. 공장에서 받아가는 것이 혹시라도 목회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까봐 이것도 인근의 목천성결교회에 맡겼다. 

한 목사는 ‘바보 찐만도’가 단순한 가게가 아닌 지역사회의 사랑방이자, 누구나 쉽게 찾아와 신앙의 문제, 사는 문제를 터놓을 수 있는 안식처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게가 오픈한 뒤 한 목사 스스로 자신이 목회자임을 밝히지 않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가나안 성도들이 찾아와 한 시간씩 상담을 하고 교회로 돌아가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아내와 예배를 드리고 마칠 때도 반드시 예배를 드립니다. 중간중간 시간이 나면 성경을 읽고 매장에는 늘 찬송이 흐르죠. 그런 이유인지 다들 제가 목사인줄 알더라고요. 믿음의 동지들은 이 가게를 ‘일터교회’라고도 부릅니다. 그 말처럼 이 ‘바보 찐만도’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교회로서 이웃들에게 생명을 나누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가진 기술이 저 혼자만 가지고 있으면 작지만, 나누면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빵 하나를 만들어도 정직하게, 이것이 복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듭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급식이 끊기면서 한 목사가 운영하는 공장도 큰 위기를 맞았다. 한 목사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하나님께 맡기면서 버텨나가고 있다. 바보 찐만도와 운영하는 공장을 통해 더 많은 선한 영향력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