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중심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기독교를 변방까지 확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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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중심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기독교를 변방까지 확산시켰다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0.08.11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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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 모였을까? ⑤

로마에 있었던 ‘가정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곳의 세 번째 가정교회는 빌롤로고와 율리아, 네레오와 그의 자매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하는 모든 성도의 교회였다(롬 16:15). 율리아는 라틴 이름이고, 나머지는 모두 헬라어 이름이다. 율리아는 ‘해방’이라는 라틴 이름을 얻은 헬라인 노예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빌롤로고와 네레오는 로마에서 흔한 노예의 이름이다. 네레오와 그의 자매는 해방된 노예로 추측된다. 그래서 빌롤로고와 율리아, 네레오와 그의 자매 올름바로 대표되는 신자들은 다른 성도들과 함께 또 하나의 가정교회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이상의 3개 처 가정교회 중 첫 번째 경우는 다수의 유대인들로 구성된 교회였으나, 다른 두 개 처 교회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노예나 해방된 노예들로 구성된 이방인들의 교회였음을 알 수 있다.


말허비는, 바울의 목회서신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가정 중심의 공동체였고 가정교회 형태였다는 점을 뒷받침 해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울의 후기 서신이라고 할 수 있는 목회서신에서는 이단의 출현과 가정에로의 침입을 경계하고 있는데(딤후 3:16, 딛 1:11), 이 서신에서는 집(가정)을 의미하는 ‘오이코스’와 그 동족어가 매우 빈번히 나오고 있다(딤전 3:4, 5, 12, 15; 5:4, 8, 13, 14; 딤후 2:10; 딛 1:7, 11 등). 교회는 하나님의 집으로 묘사되고 있고(딤전 3:15, 딤후 2:20), 직분자의 자격을 말할 때마다 가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딤전 3:4~5,12, 5:4). 이런 강조가 당시 교회가 가정교회적 형태였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보고 있다.


어떻든 가정집을 집회소로 하는 가정교회 형태는 2세기 중엽이나 2세기 말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주택을 소유한 비교적 부유한 그리스도인은 후견인(patron)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후견인의 역할이란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예배처소로 제공하고, 회집하는 성도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거나 소요경비를 부담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의미한다. 이런 후견인의 역할을 한 경우가 로마서 16장 1, 2절에 언급된 뵈뵈였다. 개역개정판 한글성경에서 “그는 사도들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번역하고 있으나 그 보호자란 후견이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런 가정집의 경우, 회집할 수 있는 인원은 50여 명 미만이었을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자는 플로이드 필슨(Floyd V. Filson)인데, 그는 1939년에 발표한 “초기 가정교회의 의의”(The Significance of the Early House Churches,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LVIII, 105~112)라는 논문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연구는 5가지 점에서 사도시대의 교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해석했다.


첫째, 기독교의 예배가 유대교의 관행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정교회는 사도시대 초기부터 유대교와 뚜렷이 구분되는 그리스도교적 예배와 식탁교제를 가능케 했다는 점, 둘째, 바울서신과 초기 기독교 문서에 나타난 가정교회는 신자의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 셋째, 한 지역에 몇 개의 가정교회가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은 사도 시대에 일종의 당파적 경향이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는 점, 넷째, 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의 상황에 대한 연구는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사회적 신분이 어떠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 다섯째, 교회의 제도나 그 변천과정은 가정교회에 대한 연구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플로이드 필슨은 가정교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사도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112년 경 비두니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는, 기독교의 확산을 보고하면서 “이 미신의 전염성은 도시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고, 마을과 농촌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했는데, 블루(Brandley Blue)는 이런 가정 중심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갈릴리 해변에서 시작된 기독교 운동을 로마의 변방까지 신속하게 확장하게 했던 유효한 요인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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