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양보해도 욕심은 끝이 없어… 명분 없는 개혁 요구는 ‘비성경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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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양보해도 욕심은 끝이 없어… 명분 없는 개혁 요구는 ‘비성경적’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0.07.2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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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단 통합의 역사를 통해 본 백석의 미래 - 연재를 마무리하며(중)

백석과 통합 이전에 대신은 이미 양분된 상태
불투명한 통합 과정이 소송 유발, 명칭 변경 계기
‘유언비어’로 총회 흔들었지만 이주훈 목사 ‘무혐의’
정상화 원한다면 분열보다 ‘화해’로 인내 했어야

본지는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약 3개월 간 백석총회가 설립 초기부터 지향해온 ‘교단 통합’의 역사를 살펴보고, 우리 총회가 나아갈 방향성을 되짚어 보았다.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 정리된 교단 통합 역사를 간략하게 기술하고 총회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함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분열’이 아닌 ‘화해’를, ‘분노’보다는 ‘인내’를 택했어야 한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분열’이 아닌 ‘화해’를, ‘분노’보다는 ‘인내’를 택했어야 한다.

4. ‌학교 명칭 주니
   총회 이름도 달라

신학교가 왜 중요할까? 신학교는 교단의 신학 정체성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계속 배출하기 때문이다. 대신총회가 절실하게 통합을 추진했던 이유에 목회자 수급 문제가 한 몫 했다. 

백석총회 목회자들은 백석대학교를 비롯한 백석신학원과 백석신대원을 하나의 ‘백석 공동체’로 인식한다. 그 배경에는 설립자에 대한 신뢰가 있다. 총회의 지원으로 학교를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 독자적 성장 속에서도 총회를 위한 헌신을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석신학교는 1991년 총회로부터 헌납 요청을 받았다. 총회가 세운 신학교도 아니었고, 장종현 목사가 사재를 털어 세운 신학교였다. 하지만 총회는 직영을 주장했고, 신학교 인수를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결론적으로 장종현 목사는 신학교 헌납을 결정했다. 이사회 회의록과 헌납 공문을 총회로 보냈다. 총회는 직영의 소망을 이루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총회는 면밀한 검토 끝에 신학교를 운영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며 헌납서류를 돌려보냈다. 그동안 학교가 교단 신학에 맞게 잘 운영했기에 “직영이 필요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만약 이때 백석신학교 목회자 양성과정을 총회가 직영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쉽게 단정할 수 없지만 교단 정치에 휩쓸리거나 내부 분쟁의 요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신학교가 교권에 휘말렸다면 지금의 백석신대원도 없었을 것이다. 교육은 전적인 희생과 봉사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성장한 신학교를 대신과 통합하면서 조건 없이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1999년 대신과 통합을 추진하던 당시, 방배동 백석신대원을 총회 직영으로 내놓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2000년 7월 백석과 대신 양 교단 공증서류에는 학교 명칭을 ‘대한신학대학원’으로 하고, 통합총회의 유일한 신학교가 된다고 합의했다. 사실상 다 내어준 것이다. 그런데도 통합은 무산됐다. 이유는 신학교도 주고 교단 명칭도 달라는 요구 때문이었다. 대신과 통합을 추진한 1999년, 2005년, 2015년 세 차례 모두 대신은 신학교와 교단 명칭을 요구했다. 대신이 양보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5. 하나님의 일,
   계산하는 것 아냐

교단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곧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2015년 교단 통합 후 대신측 교회들은 교단 명칭이 ‘대신’으로 된 것이 상당한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실제 목회 현장에서는 “우리 교회가 속한 총회는 ‘백석대학교’가 있는 교단”이라고 홍보했다. 예장 대신은 300개가 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합동은 ‘사당동 총신’, 통합은 ‘광나루 장신’, 보통 이렇게 자신의 총회를 설명하곤 한다. 성도들에게 구체적인 교단 명칭은 낯설다. 다만 수백개의 예장 중에서 내가 다니는 교회가 건강한 예장 교단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신학교가 어느 곳인지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기에 목회현장에서는 “천안 백석대학교와 함께 하는 총회”라고 설명한다. 

교단 명칭은 ‘대신’, 신학교는 ‘백석’이라는 부조화 속에서도 총회원들은 하나됨을 이뤄갔다. 이왕 성사된 교단 통합에 토를 달 이유는 없었다. “어떻게 교단 명칭을 바꾸냐”는 증경총회장의 울부짖음과 현장 곳곳에서 나온 탄식이 있었지만 총대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는 사람이 이룬 통합이 아니라 “성령이 이루신 통합”이라는 감동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백석이 대신보다 3배 가까이 큰 총회였지만 임원과 상비부서 등에 5:5 원칙을 적용했다. 2013년 통합한 개혁측 목회자들이 서운할 만큼 대신에 대한 배려는 압도적이었다. 하나를 달라면 둘을 주고, 둘을 주고 나면 다시 셋을 주는 모양새였다. 교단 신학과 사실상 결별한 안양대, 매년 문을 닫는 교회들로 인해 교회수 하향곡선에 직면한 총회, 내부 파벌 싸움으로 상처 입은 대신은 탈출구로 백석의 손을 잡았다. 많은 것을 양보하니 다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전광훈 목사는 백석과의 통합에 대하여 “김치선 혁명을 할 수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이름 대신이죠, 교단 족보 다 대신이죠. 그리고 세 번째 지금 여기요 싸인 받아왔습니다. 백석신대원을 총회에 기증하고 운영이사를 조직하여 운영권, 총장임명권, 교수임용권, 재정임명권 모든 전체를, 재단까지도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 학교 공짜로 줘도 운영할 사람이 그쪽 교단에는 없어요. 제가 볼 때는 우리 교단에서는요… 이 학교에서 영원히 재단이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김치선 혁명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반면, 자신이 평생 일군 총회 명칭을 양보하고 통합에 합류하는 단위에 따라 신학교 명칭까지도 바꿔주겠다고 했던 장종현 목사는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다 주고 나면 나중에 남는 거 있으면 돌려주겠죠. 먹다 배부르면 우리도 나눠주겠죠”라며 다 양보해도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다. 장 목사는 “하나님의 일은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대신과의 통합을 위해 총대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6. 이미 갈라졌던 대신의
    반쪽 통합

2015년 9월 통합에 이르기까지 합의서는 여러 차례 수정됐다. 당초 통합 조건은 교단 명칭 하나였다. 하지만 협상단은 대신 총회 결의에 맞추어 하나씩 하나씩 수정을 요구했고, 결국 90% 이상 합류 조건으로 명칭은 대신, 80% 이상 합류 조건으로 신학교 명칭도 ‘대신신학대학원’, 총대는 50:50으로 동수로 구성, 교단 역사는 역사편찬위가 추후 정리하는 등의 합의를 이뤄냈다. 사실상 다 준 것이나 다름없다. 의심 없이, 계산하지 않고 통합했다면 2020년 현재, 총회 명칭은 여전히 ‘대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내부 갈등으로 인해 곪을 대로 곪은 대신은 한쪽 계파가 통합을 추진하면 한쪽은 반대하는 구조였다. 실제로 잔류를 선택한 대신측 일각에서는 “차라리 우리랑 통합하자”며 “상대와 통합을 파기하면 우리가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다. 이 말은 결과적으로 100% 통합은 어렵다는 당시 대신의 상황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한쪽이 왼쪽으로 가면, 다른 한쪽은 오른쪽으로 가겠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득과 합의 과정 없이 통합을 추진하다보니 내부에는 백석과 통합 추진 과정이 비공개되고, 50회 총회가 파행되면서 법정 소송이 붙게 됐다. 

2017년 대신 수호측이 제기한 ‘제50회 총회결의 무효소송’에서 통합측이 패소하면서 ‘대신’이라는 교단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됐고, 2018년 9월 대신 측 20개 교회가 유지재단에 가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백석대신’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그런데 20개 교회 중 단 한 교회도 유지재단에 가입하지 않았다. 대신은 ‘대신인모임’을 만들어 총회 안에 작은 총회를 운영하고 있었고, 백석측에 지속적으로 ‘조건’을 내걸면서 계산하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대신총회에서 통합해온 상당수 교회가 이탈했다. 그들은 교단 명칭이 ‘백석’으로 바뀔 것을 우려했다. 총회 결의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세운 명분은 ‘총회 개혁’이었다. 이주훈 총회장을 비롯한 농단세력을 척결하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물론 총회 임원회 간에 갈등이 생기고 재판을 통해 제명과 면직 등의 판결이 난 것은 총회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만큼 사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인과관계를 바로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일부 선동세력들이 집회를 열고 싸움을 키웠다. 역대 총회장들이 각자 자신의 공약사업을 집행했지만 이주훈 총회장은 수족이 묶인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징계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회를 둘러싼 확인 안 된 유언비어는 전국으로 떠돌았다. 한마디로 ‘카톡’으로 퍼져나간 가짜뉴스는 총회를 뒤흔들었다. 

총회 문제는 내적으로 화해와 용서로 마무리 됐다. 이보다 성경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총회 문제는 내적으로 화해와 용서로 마무리 됐다. 이보다 성경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7. 하나님의 공동체 분열은
   ‘죄 중의 죄’

과연 지난 회기 일어난 사건들이 총회를 이탈할만한 일이었을까? 팩트는 달랐다. 이주훈 총회장의 수억대 횡령혐의, 사문서 위조, 명예훼손 등 교단 안팎으로 퍼져나간 모든 죄는 지난해 11월 검찰로부터 무혐의 통보를 받았고, 검찰조사 결과를 수긍할 수 없다며 항고한 2차 조사도 모두 무혐의로 끝났다. 누군가 총회장을 흔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유언비어를 만들어 외부로 흘렸고, 임원들조차도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말’ 잔치에 흔들리며 총회장을 불신했던 것이다. 

이 총회장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임원들에 대한 과도한 징계와 재판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기 위해 장종현 총회장과 현 임원, 그리고 총회 많은 사람들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사면복권을 단행했다. 갈등 당사자였던 이주훈 직전 총회장과 박경배 부총회장, 진동은 목사 등이 화해를 하고 함께 기도하며 총회 발전을 다짐했다. 정작 심각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총회에 남아 묵묵히 결과를 기다렸다. 인내의 시간을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 아닌 남는 것을 택했다. 

정말 하나님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분열’이 아닌 ‘화해’를, ‘분노’보다는 ‘인내’를 택했어야 한다. 총회 정상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면 총회 안에서 해결했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것을 빌미로 교단을 떠났다. 총회 정상화가 목적이 아니라, 같이 살기 싫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이 대단한 비리처럼 호도하던 총회 문제는 내적으로는 화해와 용서로 마무리 됐다. 이보다 성경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그들이 말하는 개혁이 이주훈 총회장이 했던 징계의 방식이라면 그것은 보복에 불과하다. 장종현 총회장은 “악순환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적으로 모두 용서하고 화해하고,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들이 강조한 숱한 비리(?)들은 어떠한가. 고소고발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했지만 그들이 제기한 모든 의혹은 죄를 특정할 증거조차 없는 ‘무혐의’로 결론이 내려졌다. 성경적으로도, 세상적으로도 이탈자들은 명분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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