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와 아집과 교만에 사로잡인 사람이 최악의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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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와 아집과 교만에 사로잡인 사람이 최악의 ‘게으름뱅이’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7.2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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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잠 21:25)

우리가 살아야 할 방식을 가르치기 위해 반대되는 인간형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잠언의 수사법에서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의 대비도 상당한 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말 그대로 활동적입니다. 일찍 일어나고 힘껏 몸을 움직이며 생각도 열심히 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움직이기 싫어하고 잠자기를 좋아하며 생각도 싫어합니다. 잠언 2:13~15은  이러한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해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아무개 이야기네 하며 입가에 피식 미소를 지었지만 내 얘긴가? 생각이 드니 가슴이 뜨끔해지고 곧바로 이어지는 16절을 읽으면 웃음기가 가십니다.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게으름의 이유가 자신감의 결핍이나 무력감이 아니라 자아도취와 자만심이라니요! 나는 천성이 좀 게을러서라고 넘길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게으른 사람’이라 읽고 성취욕이 약하긴 하지만 원만하고 낙천적인 사람을 떠올리는 연상법은 잠언 21장 25절 앞에서 여지없이 깨어집니다: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게으른 자가 사실은 자기가 누구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인간이며 제 손으로 일하기는 싫어하지만 욕망은 이글거리는 사람이라는 묘사는 사뭇 충격적이지만 게으름이 단지 행동의 속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성의 상태와 관련된다는 점을 명확히 각인시켜 줍니다.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단순한 무지를 넘어 교정을 거부하는 고집스럽고 교만한 이가 최악이듯이, 욕구는 있지만 대가를 치르려 않으며 아집과 교만에 갇힌 사람이 최악의 게으름뱅이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런 뜻에서 인간 죄성의 뿌리를 게으름에서 찾는 정신의학자들의 설명을 참조할 만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정확히 알려 하지 않고 갈등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에 일었을 갈등을 살피지 않은 것이 그 게으름이고, 우리가 죄와 자기 파괴적인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자신 내부에 일고 있는 선과 악의 갈등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해결하는 힘든 일을 회피하려는 성향, 즉 우리의 영적, 정신적 게으름에 있다는 뜻입니다. 엄격한 자기성찰은 집중된 정신 에너지는 물론 자신의 실체를 받아들이고 실망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함을 요구합니다. 오랜 상처와 실패, 변명과 부인이 쌓여있는 자신의 내면을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회피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게으름이 만 가지 죄를 낳는 원천이라는 말이 그래서 설득력을 갖습니다. 이러한 영적 게으름은 단지 난 바라는 게 없다. 욕심내지 않고 무리하지 않게 살겠다는 태도와는 출발점이 다르고 결이 다릅니다. 


사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워커홀릭,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룬 이들도 영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게으름에 관한 잠언의 말씀들은 그렇게 굳어진 일상을 넘어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초대의 말씀입니다. 외면의 성취와 남들의 부러움을 이루어도 이 게으름을 깨지 못하면 복된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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