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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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7.21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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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23) - “이에 미혹되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잠 20:1)

도로교통공단은 지난 5년간(2015∼2019년) 전국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9만 8천여 건에 사망자는 2천100여 명, 부상자가 17만 명이라고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꿈 많던 한 청년의 생명값이라 할 입법에도 불구하고 실체적 변화는 미미하니 답답합니다. 

술 마시는 행동 자체를 죄악이라 볼 순 없지만 술이 충동성을 매개로 실수와 범죄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팩트입니다. 더구나 강압적이고 집단적인 음주문화가 건재하고 음주사실이 범죄의 변명과 감형이유로 여전히 통하는 한국 사회인지라 “(술)에 미혹되는 자는 지혜가 없다”는 잠언 20:1 말씀이 새삼 엄중히 다가옵니다. 

본문은 “포도주는 거만한 바보, 독주는 소란스런 불량배 / 이것으로 속이는 자 지혜가 없음이여”로 번역됩니다. 술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생히 묘사한 전반절도 인상적이지만 하반절이 특히 의미심장합니다. 술에 미혹되는 상황으로 의미를 좁힌 개역개정과 달리 원문은 [그것]이 특칭되지 않았고 속임을 당하기보다는 스스로 속이는 정황으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사람은 술 마셔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 어리석다는 말씀입니다. 주량을 믿고 자신과 상대의 자제력을 믿다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는 만용의 결과는 참혹할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목소리가 커집니다. 목소리를 키우려 맘먹어서가 아니라 청각이 둔해져서 자기 소리가 작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취객은 비틀거리며 걷습니다. 춤추고 싶어서가 아니라 평형감각이 손상되어서 자기는 똑바로 걷는다는 것이 그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반듯했던 이가 망가졌는데, 자신의 기준이 무너진지도 모르고 스스로는 괜찮다고 뻐기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난 괜찮다, 내가 알아서 한다는 자세가 교만입니다. 본문에 ‘거만’은 3등급 바보 ‘레쯔’입니다. 몰라서 실수하는 1단계, 게을러 반복하는 2단계를 지나 자기변명과 정당화, 교정을 거부하는 아집으로 뭉친 3단계에 도달한 바보는 도움과 훈계를 비웃고 내치는, 구제받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잠언 20장 인근 문맥에 왕의 존재가 보입니다. 왕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고(20:2), 심판석에 앉아 악을 흩어버리는 존재입니다(20:8). 

악을 흩어버린다는 그림언어는 쉬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내가 내 인생의 기준이 되어 만사를 결정하고 남들을 재단하겠다는 교만한 자들에게는 엄위한 왕의 호령과 꿈틀거리는 눈썹이 좋은 치료제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인간 왕 역시 실수하고 타락할 수 있기에, 사람들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게 하는 왕이 결국은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8절의 왕은 9절을 매개로 10절의 하나님께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남을 비판하는 기준을 정말로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런 엄격함을 갖겠다는 나 자신의 결심조차도 믿고 의지할 대상은 못됩니다.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20:24) 모든 판단을 유보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확신과 교만이라는 독주를 쏟아버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잠 3:5~6).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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