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울리지 않는 옷
상태바
[기자수첩] 어울리지 않는 옷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0.07.21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 달 초 다소 생뚱맞다싶은 기사를 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엔 촌극이라 여겼지만 실종 시간이 길어질수록 혹시나 싶은 걱정이 커져갔다. 아니길 바랐던 상상은 끝내 사실로 확인됐다.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속보가 TV 화면을 가득 채웠다. 

불미스러운 죽음을 놓고 상반된 반응이 오갔다. 고인의 업적을 강조하며 애도하는 세력, 그에 반해 성추행 의혹에 주목하며 추모를 거부하는 세력. 여기서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 생각은 없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그의 죽음을 놓고 펼쳐진 보수와 진보의 역설이다. 

진보 세력은 그동안 페미니즘을 표방하며 지속적으로 여권신장에 목소리를 내왔다. 반대로 보수 세력은 극단적 페미니즘에 다소 부정적이었고 미투운동 참여에도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보 인사의 죽음과 성추문이라는 두 가지 이슈가 겹치자 그들은 색깔을 바꿨다.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이 갑자기 ‘여성인권’을 외쳤고, 진보 세력은 자신들이 쏟아냈던 말들을 까맣게 잊은 듯 피해자의 외침을 애써 외면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친 두 진영을 보고 있자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핏대 세운 논쟁 속에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공감과 위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토록 여성인권의 대변인인양 떠들어왔던 진보세력은 피해호소인이라는 말을 만들어가며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다. 보수세력은 소수정당이 된 현실을 전복시킬 기회이자 도구로 여성인권을 내세웠을 뿐이다. 

진영논리가 크리스천들조차 잠식하는 모습을 종종 접한다. 이번엔 여성인권이 진영싸움의 도구로 전락했듯, 하나님의 말씀조차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보태줄 수단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리스도파가 되어야 한다. 죽음과 사건과 사람을 바라보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먼저 고민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