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좁아진 교회? 더 좁혀진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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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좁아진 교회? 더 좁혀진 구원?
  • 노경실 작가
  • 승인 2020.07.2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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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105

<야고보서 2:2~4>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내가 사는 아파트 408동 앞을 들고날 때에 종종 보게 되는 할아버지가 있다. 그 할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늘 같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한 쪽 구석, 나무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 누가 보아도 병색이 짙다. 옷차림은 허술하다. 외로움과 늙음과 병듦. 인간의 삼중고를 다 안고 있는 서글픈 형상.

작년 가을, 나는 감기약과 쌍화탕을 사가지고 오다가 또 그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래서 쌍화탕 2병을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쌍화탕이 따뜻해요. 드세요.” 그러나 쭈그려 앉은 할아버지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그때부터 나는 할아버지를 더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맛있는 먹거리를 들고 방문할까 했는데, 정기적으로 복지관에서 음식을 배달해주는 것과 나의 쌍화탕을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을 보고 단념했다. 그렇다고 관리사무실에 가서 그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는 사이에 우한바이러스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변함없이 나무 아래에서 담배를 피웠다. 얼굴은 볼 때마다 수척해졌다. 2월 쯤에는 두꺼운 점퍼를 입고, 봄에는 얇은 스웨터를, 요즘에는 반팔 늘어진 셔츠를 입고 담배를 피운다. 안타까웠다. 저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내가 같은 또래의 남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집에 찾아가서 전도를 하고, 말벗도 되어주고.

고민하다가 교회 셀리더에게 의논했다. 이러이러한 분이 있는데, 부목사님께 말하면 심방 와서 복음을 전하시지 않을까요? 그런데 셀 리더 역시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셀 리더: 요즘, 어떤 교회들이 그런 사람을 심방 가서 전도해요? 늙고, 병들고..., 그래서 주일마다 예배 참석하려면 누군가 차에 태워서 모셔 와야 하는데... 그 수고를 또 누가 하겠어요? 더구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부 사람들은 교회에 올 수도 없는데...

바보, 나; 그럼 그 할아버지는 어떡하죠? 우리 둘이 갈까요?

셀 리더: 한 번은 할 수 있지만, 그 다음은 어떡하려고요? 지금 바이러스 때문에 교회가 애매하게 핍박을 받고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신고라도 하면 문제가 얼마나 커지겠어요.

바보, 나: 그럴 수 있겠네요...

셀 리더: 이래서 구원받는 길이 더 좁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구원의 때가 있다는 말이 실감나요.

바보, 나: 그런 것 같네요.

셀 리더: 그러니 진작 예수님 믿게 된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요. 그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죠. 하지만 바이러스 사태가 끝난다 해도, 달라질 건 없을 거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정말 요즘은 가난하고, 늙고, 병든, 말 그대로 3종 세트의 고난을 안고 있는 사람이 교회 오는 걸 힘들어 해요. 심방 신청해도 교회에서 난감해할지도 몰라요. 그냥 요양원에 계신 분들을 심방 전도하는 건 괜찮지만요. 

바보, 나: 아... 그런가요...

이것은 실화다. 또한 현실이다. 그리고 죄악이다.

바이러스를 핑계로 세상은 무차별적으로 교회와 성도를 공격하고 있다. 초대 교회 때의 로마와 같다. 눈에 보이는 칼과 창, 쇠사슬과 채찍, 사자와 악어, 불더미와 십자가만 없을 뿐이다. 대신 헛소문과 과장된 정보, 비아냥과 조롱, 협박장과 경고문, 벌금과 재판으로 교회와 구원의 길을 막고 있다. 

그러나 구원으로 가는 길을 더 좁고, 더 험난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우리들, 즉, 교회 안에 있다. 늙었으되 가난하면 환영받지 못한다. 병들었으되 가난하면 영접받지 못한다. 늙고 병들었으되 가난하면 고개 숙이지 않는다. 그래서 가난하고, 가난하여, 가난하면 그 사람에 대한 구원의 생각도 가난해진다. 차라리 칼과 창, 쇠사슬과 사자의 주둥이와 채찍이라면 명예롭기나 할텐데.

우한바이러스보다 더 무섭고 더 끈질긴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 오죽하면 예수님은 유치원 아이들에게나 하실 말씀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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