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살리는 신학은 예수 생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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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살리는 신학은 예수 생명에 있다
  • 곽인섭 목사
  • 승인 2020.07.1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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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생명신학 하나님나라운동①

어떻게 하면, 학문의 틀 안에 빠진 신학을 교회를 살리는 생명력있는 신학으로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두 방향으로 접근을 해야 하는데, ‘신학의 생명화’와 ‘사람의 생명화’입니다.  

먼저, ‘신학의 생명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신학이 발달할수록 교회가 약해지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문제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한국교회를 보면, 교회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각 교단들은 넘쳐나는 목회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신학교육에 활발하게 투자했고, 이로 인하여 신학의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신학이 발달할수록 교회와 신학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목사 수련생으로 교회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신학대학에서 공부하는 신학도들은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체험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목회현장에서 교회를 세우는 것 사이에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무엇이 맞는가? 어디에 힘을 쏟아야 하는가?’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백석학원 설립자 장종현 목사님은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주창합니다. 

장종현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부흥과 쇠퇴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한 교회에 갇혀 있지 않고, 신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을 가까이에서 많이 겪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신학의 문제, 신학과 교회의 대립에 대한 영적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통찰력을 기반으로 교회를 살리는 신학,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외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를 살리는 신학이 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사람의 생명화’입니다. 열왕기상 16장 29절부터 34절은 엘리야 선지자가 등장하는 시대의 영적 현실을 보여줍니다. 

먼저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하고, 우상숭배를 열정적으로 한 아합왕과 그의 아내인 이세벨이 나옵니다. 이들은 바알 우상을 노골적으로, 국가적으로 숭배합니다. 뿐만 아니라, 벧엘 사람 히엘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죄의 온상인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6장 26절에서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것이다. 기초를 쌓을 때 맏아들이 죽을 것이고, 문을 세우면 막내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이 말씀을 알고도, 히엘은 여리고성을 다시 짓습니다. 맏아들이 죽어도, 끝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합니다. 영적으로 너무나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십니다(왕상 17:1).

엘리야는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왕상 17:1)하는데, 이 말씀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즉,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대안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대안은 사람입니다.

E. M. 바운즈는 “사람들은 더 좋은 방법과 수단을 찾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좋은 사람을 찾으신다”고 말합니다. 시대가 어두울 때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대안은 말씀의 사람, 기도의 사람, 즉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참고, 대하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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