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진료나 원격 예배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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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진료나 원격 예배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 송태호 원장
  • 승인 2020.07.14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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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 송태호의 건강한 삶 행복한 신앙-31

30대 후반의 여성 환자가 피곤하다며 병원을 찾았다. 환자와 보호자는 모르고 있었지만 나는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환자가 황달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별 일 아닐 것이라는 환자를 달래 간염에 대한 혈액검사를 하였고 검사결과는 A형 간염이 의심되었다. 간 수치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바로 응급실로 환자를 보내 입원치료를 하도록 했다. 성인이 A형 간염에 걸린 경우 적지 않게 전격성 간염이 되어 간 이식을 제외하고 치료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분들도 컴퓨터나 휴대폰을 이용한 온라인 쇼핑을 자주 할 것이다. 화면으로 물건을 확인하고 구입을 하려 맘을 먹을 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화면에서 보이는 색상은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나도 몇 번 온라인으로 옷을 구매했다가 색상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달라서 반품시킨 적이 있다. 만약 ‘원격 진료’가 보편화 되어 이 환자를 원격으로 진료하였더라면 나는 그 환자가 황달이 있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사는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진료를 시작한다.  환자의 걸음걸이, 옷매무새, 안색, 발성 등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와서 의자에 앉기까지 의사가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정보가 있다. 검사 결과가 중요하지만 검사 결과 뿐 아니라 이런 제반 사항들이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만성질환은 검사 결과 이상이 있어도 환자가 자각증상을 느끼는 경우는 매우 적다.  따라서 환자는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거짓말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공복 혈당이 높은 경우인데 식사를 했다고 할 수도 있고, 안정 시 혈압인데도 방금까지 힘든 일을 했다고 속일 수도 있다. 환자를 직접 대면하고 있다면 환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정부가 대상으로 삼으려는 대부분 계층의 환자들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다. 인터넷이 설치되지 않은 가정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격 진료가 가능할 정도의 환경을 만드는 데는 돈도 많이 들 것이다. 아무리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익숙지 않다면 당연히 실수가 많다. 실수에 의한 오진인 경우 환자의 책임인가, 의사의 책임인가? 또 국민 건강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동네 병원들이 없어질 것이다. 먼 곳에 있는 이른바 ‘명의’들에게만 원격 진료가 몰리지 않겠는가?

원격 의료를 찬성하는 쪽에서 실례로 든 것은 PACS(Picture Archiving Communication System·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다. 이것도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으나 실행해 본 결과 별문제 없지 않느냐는 식이다. 유감스럽게도 영상은 2차원적 이미지다. 현장에서 보나 그것을 전송하여 보나  같은 사진에 불과한 것이다. 의술은 3차원적인 기술이다. 시각뿐 아니라 촉각이나 냄새마저도 진찰의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원격 의료는 땅덩어리가 넓어 온종일 차를 타고 가도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나라들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정부가 진실로 그들을 걱정한다면 원격 의료보다는 왕진을 강화하고 오지에 흩어져 있는 군 의료시설을 활용하면 된다. 의사가 드물던 예전, 오지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던 공중보건의들과 각 대대급에 분포되어 있는 군의관들을 이용하는 것이다.(사실 요즘 의사 없는 동네가 얼마나 되는가?)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에 원격 국정감사를 위한 대규모의 회의장을 많은 돈을 들여 마련했다. 하지만 이 장소는 별로 이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얼굴을 맞대는 것이 중요함을 국회의원들도 아는 것이다. 원격 진료는 국가 보건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일이다. 섣부르게 시행하면 의약분업처럼 돈은 돈대로 들고 실효성은 적을 수 있다. 꼭 필요하다면 적어도 의사와 환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의학은 학문이지만 의술은 3차원적 기술이다. 검사 결과 몇 개와 모니터에 비치는 환자의 모습만으로는  올바른 진료가 이루어질 수 없다.

예배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 때 올바른 복장을 갖추고 드리지 못할 것이고 아무래도 설교를 듣고 찬송을 함에 있어서도 감동을 받기 힘들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교제하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사도행전 2장 42~47절에서 볼 수 있다. 필자의 직업상 항상 감염원이 될 수 있기에 그 동안 교회 출석을 삼가고 온라인 예배를 드렸지만 예배에 대한 갈급함이 점점 심해졌다. 묵상기도 후 읽은 이 사도행전의 말씀에 따라 지난 주부터 사람이 제일 적은 예배시간을 선택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배를 마음껏 드릴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송내과 원장·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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