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원옥 할머니의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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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옥 할머니의 마음은?
  • 김종생 목사
  • 승인 2020.07.0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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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생 목사/글로벌디아코니아센터 상임이사

명성교회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로 제공한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평화의 우리집’은 아침부터 북적대었다. 지난 8년간 이곳에서 김복동, 이순덕 할머니와 같이 거주해 온 길원옥 권사님께서 양아들 집으로 이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밖에는 언론사에서 취재차 대기를 하고 있어 긴장감이 감돌았고, 집안 역시 그동안 직·간접으로 할머니를 섬기고 관계해 온 몇몇 분들이 미리부터 와서 아쉬움을 나누는데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다.

 “아드님 댁으로 이사하니 좋으시겠네요?” 

길원옥 권사님께 여쭈어보았다. 

“좋기는 하지만 여기 그냥 살면 안 되나?”라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나이 늙어 이사 다니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잠시 뒤에 이삿짐 차와 함께 아들 내외가 도착하였다. 아들이 길원옥 할머니께 “어머니, 이제 저희 집으로 가서 같이 살자”고 인사하자 “인생을 잘 산 것도 아닌데 아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지 뭐”하셨다. 조금 전에 이사하지 않고 여기서 그냥 살면 안 되느냐고 하셨던 말씀을 거짓말처럼 뒤로하고 아들을 따라 일어서려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덧신을 신으셨다.

사람에게는 양가감정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어떻게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실 수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두 가지의 감정, 두 개의 마음은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길원옥 권사님께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쉼터에서 그냥 살고 싶은 마음과 아들 집에 가서 이젠 가족들과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 이 두 마음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것이 필자가 듣고 본 사실인데 여러 언론사의 취재 내용은 서로 다르게 기사화되었다. 보수진영의 언론들은 자녀들과 비로소 살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진보진영의 언론들은 아들의 양자 호적과 그동안 어머니 길원옥 권사님으로부터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일정액을 부정기적으로 받아갔다고 보도했다. 언론의 보도는 객관성을 잃으면 안 되는데 그 실상은 어느새 진영논리와 당파성에 사로잡힌 듯했다. 무엇보다도 이 사안의 중심에 서 있을 역사의 질곡 속 주인공 위안부 할머니, 길원옥 권사님의 편의와 편안함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기구했던 지난날의 아픈 여정을 이해하고 이제 남은 생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사시는 길이 어느 길일까를 고민하는 것 같진 않았다. 

우리에게는 진영이 있고 편을 갈라 내 편을 정당화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그 사람을 좋게 혹은 옳게 보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어느 누구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성경의 관점이다. 절대와 완전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겠지만 하나님 외에는 이 두 단어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결함 없는 사람이 없고 문제없는 사람이 없다. 역사가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좀처럼 평가하지 않는 편이다. 그 이유는 공과가 있기 때문이다. 

길원옥 할머니와 관련하여 우리는 사심 없이 물어야 한다. 

“무엇이 길원옥 할머니를 위하는 것인지?” 그리고 다시 물어야 한다. “길원옥 할머니의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를.

길원옥 할머니의 여생이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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