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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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 이근복 목사
  • 승인 2020.07.0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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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복 목사/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요즘 북한의 행태를 보면 당혹스럽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남북군사합의를 파기선언하는 등 강경기조로 나가더니, 16일 남북 화해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급기야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이 담긴 대남 삐라(전단)를 대량 살포하겠다고 선언하더니 잠시 보류되었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한순간에 악화되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마음 한켠에는 지금이야말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겨울은 어차피 춥고 힘들지만, 겨울에 봄을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남한이 북한의 입장이 되어서 북한을 더 이해하려 하고 인내할 때 창의적인 길이 열릴 것이다.

『장자』 <제물편>에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송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원숭이를 좋아하는 저공이 농장에 워낙 많은 원숭이를 기르다 보니 먹이를 대는 일이 날로 어려워졌다. 하는 수 없이 원숭이에게 나누어 줄 먹이를 줄이기로 하고, 어느 날 원숭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나누어 주는 도토리를 앞으로는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씩 줄 생각인데 어떠냐?” 사실 긴 밤에 배고프지 않도록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원숭이들은 하나같이 반발하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마.”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했다고 한다. 이 고사를 보통 잔꾀로 남을 속이는 얄팍한 술수나 똑같은 결과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여기서 저공의 태도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제깟 원숭이 주제에 주는 대로 먹어야지’라고 무시하지 않고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이다. 적극적인 소통이 원숭이들을 만족시켜 평화로운 해결로 이어진 소통의 가치를 여기서 배우게 된다. 우리도 역지사지하며 북한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더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구약성서 사무엘하 12장에 다윗이 권력을 이용하여 밧세바를 취한 사건이 나온다. 다윗이 자기 죄를 은폐하기 위해 충성스런 군인 우리야를 교묘하게 살해하자, 하나님은 예언자 나단을 그에게 보내셨다. 나단은 가축이 많은 부자가 손님 대접을 위해 가난한 사람이 딸처럼 여기는 어린 암양 한 마리를 빼앗은 이야기를 다윗에게 들려준다. 이에 다윗이 몹시 분개하면서 “저런 죽일 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 인정머리 없는 짓을 한 놈을 그냥 둘 수는 없다”(공동번역)라고 말하자, “임금님이 바로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의 만행을 생생하게 인식하게 한다.

북한의 거친 언사와 폭력적인 대응을 보며 우리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도 그 부자처럼 처신했거나, 부자 미국에게 죽임을 당하는 가난한 북한을 사실상 외면해 온 것은 아닐까? 사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세 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남한과 여러 가지 전향적인 합의를 했지만 이행된 것은 거의 없다. 남한이 미국을 설득하여 제재완화를 기대했지만 진전이 없었고, 개성공단 재개나 금강산 관광조차도 실행되지 않았으니, 남한이 미국의 눈치만 본다고 생각할 소지가 크다. 

부부관계를 잘 유지하는 데 아름다운 추억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남북의 아름다운 경험은 결코 지워지지 않고 위기 때마다 디딤돌이 되어 왔다. 화해와 평화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이야말로 중심을 잡고, 예수님 사역의 토대인 ‘긍휼’의 마음을 품고 역지사지하며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위해 뜨겁게 기도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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