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뜻에 순종하는 겸손이 보이면, 존귀가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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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뜻에 순종하는 겸손이 보이면, 존귀가 따라온다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7.07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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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21) -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 18:12, 한글개역)

제목을 가져온 잠언 18:12의 개역개정판 본문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입니다만, 왠지 오래된 개역성경을 따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로 읽게 됩니다. 사실 원문의 뜻은 겸손이 보이면 그 뒤에 존귀가 따라온다, 즉 안내자보다는 선도 차량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입니다. ‘당신 눈앞에 겸손 씨가 공손하게 걸어오거든 곧 존귀하신 양반이 뒤따라오시겠군…’ 하고 생각하라는 셈이지요. 

보다 근래에 나온 역본들의 경우 “교만에는 재난이 따르고 겸손에는 영광이 따른다”(공동번역), “사람이 망하려면 먼저 교만해지지만 존경을 받을 사람은 먼저 겸손해진다”(현대인의성경), “사람의 마음이 오만하면 멸망이 뒤따르지만, 겸손하면 영광이 뒤따른다”(새번역) 등으로 풀어 옮겼습니다만, 겸손과 존귀를 생동감 있게 의인화한 본연의 의도는 오히려 오래된 개역본에 더 잘 드러나 있다 하겠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앞잡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지 않다는 생각은 듭니다. 

어려서 광복절기념 특집드라마 같은 데 나오는 서양 사냥모자에서 왔다는 납작모자에 콧수염을 장착하고 일본 고등계(정보과)에 빌붙어 동족을 괴롭히는 이들을 ‘앞잡이’라 불렀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표준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앞잡이는 (1)앞에서 인도하는 사람, (2)남의 사주를 받고 끄나풀 노릇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뜻으로 하자면 앞잡이라는 번역은 오늘날 사용해도 아무 문제없는 번역이겠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겸손이 존귀 앞에서 걷는다는 묘사와 더불어 겸손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격언들이 함께 있습니다.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18:18) 다툼이 있을 때 한쪽 얘기만 들으면 안 되고, 섣불리 나서서 남의 일에 재판장 노릇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겠습니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18:13)는 말씀도 따로 떼놓고 보면 경솔함에 대한 경고로 읽히지만 겸손과 연관해 생각해보면 쉽게 내 입장(대답)을 정하는 행동 자체가 교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 그건 말이지…” “아니 그게 아니고…”라며 재단해 말하는 사람은 조만간 낭패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겸손은 단지 자신의 실력이나 성취를 낮춰 말하는 정도를 뜻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의지와 선택,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의 요인들에 의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해 좌우되는지를 알고 받아들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는 그런 뜻에서 겸손한 삶의 요체를 정확히 정리해주는 말씀입니다. 살다 보면 자신의 지식과 판단은커녕 자신의 기억도 믿을 수 없어집니다. 

어느 원로급 요리연구가의 말이 기억납니다. 자신이 전수받았던 궁중요리 조리법을 책으로 남기고 제자를 키우게 된 이유는 그것을 널리 보급하겠다는 사명감에서가 아니라, 어느 날 자기가 기억한 대로 조리한 음식 맛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평안과 겸손을 누리는 이들에게 삶은 성공과 존귀로 보답합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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