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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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
  • 노경실 작가
  • 승인 2020.07.07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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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104

<로마서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데 “잠깐만요!” 외침에 놀라 얼른 열림 버튼을 눌렀다. 한꺼번에 9명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6층을 누르고 맨 뒤로 물러섰다. 10층을 누른 그들은 방금 숯불구이 고기 요리를 먹었는지, 마스크를 썼는데도 아홉 사람의 몸에서 무작정 쏟아져 나오는 냄새에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여든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와 가족처럼 보이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6층까지 올라가는 짧은 시간, 나는 내 앞에 선 할머니의 뒷모습을 어쩔 수 없이 살펴보게 되었다. 모자와 긴 팔 블라우스, 그리고 바지와 구두. 모두 돈 좀 들인 차림새였다. 뒤에서 보니 나이보다 젊게 느껴졌다. 

온 몸에 고기 냄새를 뒤집어 쓴 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여든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의 머리부터 발까지 다 가려주고 있는 모자, 옷, 구두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할머니가 옷을 벗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다. 늘어진 피부, 8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내오면서 생긴 크고 작은 상처, 울룩불룩 튀어나온 살, 큰수술이라도 했다면 주욱 그어진 자국, 불이나 뜨거운 물에 데었다면 쪼그라든 살갗, 그리고 숱 없는 머리카락…. 그러나 옷과 모자, 신발로 할머니는 완벽하게 그 모든 것을 감춰버린 셈이다. 

어디 이 할머니뿐이랴. 사람은 대부분 이십대를 지나면 특별한 직업군이 아닌 이상 몸은 변형된다. 뒤틀리고 늘어나고, 처지며 굽어지고, 색깔마저 변한다. 하지만 옷만 잘 입으면 모든 것이 감추어지고, 심지어 멋쟁이가 된다. 명품이 아니어도 괜찮다. 옷을 입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여러 가지 단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집에 가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면 어떻게 될까? 반바지에 반 소매 윗도리, 그리고 모자도 벗고 구두도 벗으면 ... 노인의 몸이 그대로 드러난다, 염색한 숱 없는 그래서 속이 훤히 보이는 머리도 드러난다. 쭈글쭈글한 두 발은 어떻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씀을 종종 읽고 듣는다. 하지만 그리 실감나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올 때 최대한 깨끗하고 단정한, 혹은 가장 좋거나 최근에 구입한 옷을 입고 오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여기에 경건한 마음까지 곁들여서 퀘이커 교도들처럼 하고 오는 사람도 있다. 또,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팔다리 훤히 드러나지 않는 차림새, 발가락이 보이지 않는 신발 등등으로 신경 쓰기도 한다. 물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헐!’ 소리가 절로 나오는 차림새를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마음을 쓰면서 입어야 할 그리스도의 옷은 무얼까?’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그러나 일관 되게 답해주는 사람은 바울이 아닐까 한다.  골로새서, 에베소서, 고린도전후서와 갈라디아서 등을 보면 바울은 옷, 장막에 대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말한다. 그가 천막 관련 일을 한 것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보다는 할머니의 옷을 이야기하고 싶다. 80년이 넘는 인생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어릴 때의 부드러움과 매끈한 피부는 변했다. 노화로 인한 주름과 갖가지 상처, 처진 살, 때로는 이제는 시커멓게 변한 수술 자국 등등. 이것은 우리의 영혼육과 똑같다. 

저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실수와 잘못, 죄와 악습과 욕망으로 영혼육이 얼마나 흉하고 거칠고, 섬뜩하며 혐오스럽기까지 한 상처와 자국들이 많이 있겠는가? 물론 죄와 욕망과 악습 등과 싸우느라 생긴 영광스런 상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값없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감쪽같이 숨기며 살고 있다.  이거야말로 웬 은혜인가!  

만약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못한다면 영혼육의 온갖 추악하고, 흉물스러우며, 역겨운 자국과 상처딱지, 특히 혀로 서로 주고받은 ‘혀의 칼자국’ 등... 다 드러날 것이다.  

나에게 얼마나 이런 흔적들이 많은 것을 자각한다면 우리는 웬만한 일에는 입을 다물 것이다. 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여기며 발걸음 소리마저 조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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