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직결된 것 아니라면, 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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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직결된 것 아니라면, 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0.07.0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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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단 통합의 역사를 통해 본 백석의 미래 - (9) ‘통합정신’ 어떻게 지켜왔나

1981년 통합한 연합과 은혜, 백석과 이질감 없이 한 가족 이뤄
통합 결단한 상황들은 달라도 ‘목회를 위해’, ‘후배를 위해’ 필요

교단과 교단이 합치는 것은, 그 과정도 어렵지만 합친 후 함께 사는 것이 훨씬 어렵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라는 남녀의 차이를 비유한 어떤 책의 제목처럼, A교단과 B교단은 태생부터 성장배경, 문화적 차이까지 달라도 참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 통합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은 근본적 바탕인 기독교 신앙과 교리 자체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됐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정확 무오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믿으며, 십자가와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라 할 수 있다. 애초에 하나로 출발한 한국장로교단이 ‘대한예수교장로회’ 이름으로 337개나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백석총회는 1978년 복음총회를 시작으로 1981년 합동진리+연합(은혜), 2013년 개혁(장지동측), 2014년 개혁(광주측)과 성경, 2015년 대신과 통합을 이루기까지 교단 창립부터 총 6번의 통합을 이뤄냈다. 사실 통합의 목적은 시대마다 달랐다. 그러나 통합을 선언할 때는 하나님 앞에 분열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된 것을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1981년 교단 통합으로 하나가 된 연합과 은혜 측은 큰 갈등이나 이질감 없이 한 가족으로 살아왔고, 초창기 교단을 이끌었던 주역들은 지금 원로가 되어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통합에 참여하고 굳건히 자리매김한 사람들은 어떻게 통합정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일까? 

지난 2014년 백석과 성경총회가 교단 통합을 선언했다.
지난 2014년 백석과 성경총회가 교단 통합을 선언했다.

전두환 정권 신학교 정비령
군소교단들 통합 유발

은혜 측의 대부인 평택은실교회 원로 홍태희 목사는 원래 오순절 출신이다. 극동사도선교회가 한국에 들어와 세운 중도성서신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예수교오순절교단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오순절교단은 신유와 은사를 중시하고 성령 체험을 강조한다. 세례는 반드시 침례로 받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준다. 장로교단과 신학적 차이는 큰 틀에서 이것이 전부다. 

홍태희 목사와 함께 은혜 측을 대표하는 교회는 대전 가양제일교회다. 중도성서신학교는 가양제일교회에 있었다. 가양제일교회, 해남교회와 가동교회, 평택은실교회 등이 대표적 은혜 측 교회다. 

오순절 신학의 은혜 측이 백석 가족이 된 배경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전두환 군부정권 당시 무인가 신학교 정비령이 내려지면서 교단 신학교가 폐쇄되고 인가 신학교를 가진 교단과 통합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었다. 당시 상당수의 신학교들이 폐쇄됐고, 교단 산하 신학교들은 인가 학교 중심으로 통폐합 됐다. 

마침 오순절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한 몫을 했다. 신유와 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에 대해 이단이라는 오해가 생겨나기도 했다. 소속 교회들이 안정적으로 목회를 하기 위해 장로교단으로 바꾸면서 예장 은혜총회로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대전 연합부흥회가 인연이 되어 연합 측과 1981년 1월 통합을 하게 됐다. 연합 측의 대표적 교회는 송정교회, 평화교회, 삼일교회, 흰돌교회 등이다. 

연합과 은혜는 통합 후 ‘연합총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연합은 백석의 전신인 합동진리와 통합을 하게 된다. 신학교 폐쇄 조치에도 불구하고 합동진리는 방배동 신학교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기에 신학교가 있는 교단과 통합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통합 후 이듬해 총회 명칭은 ‘합동정통’으로 바뀌게 됐다. 

오순절에서 장로교단으로 교단 정체성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장로교단들과 연이은 통합까지 은혜 측 입장에서는 정착이 쉽지 않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홍태희 목사는 “교리적 차이들을 말하지만 성경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다. 단순히 침례냐 세례냐의 차이였고,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구원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다. 한쪽이 내려놓으면 되는 것이었다. 통합 당시 요구조건들은 없었다. 조건 없는 통합을 이뤘고, 함께 총회와 신학교를 잘 세워나갔다”고 회고했다. 

군소교단 목회 한계 느껴
건강한 신학 백석과 통합 

2014년 백석과 통합한 예장 성경총회. 통합 당시 총회장이었던 곽성현 목사는 원래 합동 대림측을 이끌고 있었다. 합동 대림측은 교단 규모는 작았지만, 한국장로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 등 연합기관에 가입되어 있었다. 작지만 건실한 교단이 굳이 통합에 나선 이유가 뭘까?

곽 목사는 “군소교단의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단이 작다보니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이단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고, 신분을 해명할 방법도 없었다는 것. 교단 통합을 위해 여러 교단과 접촉했지만 협의과정에서 결국 자기 욕심들을 내려놓지 못해 성사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가 2012년 예장 성경총회와 통합을 했고, 이후 2014년 백석과 통합에 이르게 됐다. 

곽성현 목사는 “백석과 통합을 결정한 첫 번째 이유는 신학교였다. 건강한 신학대학교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고, 백석총회가 대형교단으로 입지를 든든히 하고 있는 것도 이유였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당시)나이가 많아 통합이 절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배 목사들을 위해 큰 교단 울타리가 필요했고, 지금도 후배들을 위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우리 모두 ‘백석’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후배들에게 좋은 교단과 통합해주어 고맙다는 소리도 듣는다”고 밝혔다. 

예장 성경 측은 잘 정착해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은 쉽고도 어려운 길이다. 통합 후 서운한 마음이나 불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통합에 반대하는 그룹이 남는 경우, 2개였던 교단이 3개나 4개로 늘어나 오히려 분열이 증폭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통합한 교단 목회자들도 
정치 중심에 들어갈 길 열어야

2013년 백석과 통합한 개혁 장지동 측 이선 목사는 “백석과 통합할 때 남은 교회들이 2개의 교단으로 갈라졌고, 통합 후 정착을 못하고 나간 교회들이 또 교단을 만들었다”며 교단 통합의 대의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후유증은 분명히 있음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통합을 할 때보다 통합 후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순수하게 목회만 한다면 대형교단 그늘에서 사는 것이 좋지만, 총회 정치를 꿈꾼다면 기존의 기득권의 저항을 받아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 

“어느 교단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기존 회원들의 텃세로 인해서 마음이 상하게 된다면 결국 교단을 떠나는 사람도 생겨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런 점에서 백석총회는 정치의 장이 상당히 협소한 점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어느 정도 목회에 자리 잡고 나면 누구나 정치적 꿈을 갖게 되어 있다. 그것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나. 명예나 자리를 갖고 싶은 정치적인 야심을 해소하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백석 주류만 정치 중심에 있고, 통합이나 가입한 회원들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정붙이고 살기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노회연합이나 지역연합회 등 크고 작은 모임들이 활성화 되어서 총회에 오지 않아도 신나게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진다면 정착이 더 쉬울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선 목사의 지적은 완전히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합친 사람들에게도 남고싶은 명분을 좀 달라는 것일 수 있다. 예장 개혁은 하나가 되기 위해 ATA 과정에 적극 참여해 백석 동문이 됐고, 개혁주의생명신학에 동조하며 교단 신학에 빠르게 정착했다. 

개혁 광주 측과의 통합은 호남 지역의 유대 강화를 불러왔고, 호남에서 존경받는 원로인 한광식 총회장을 중심으로 백석의 영향력이 확대됐다. 

하지만 이선 목사의 정치논리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다. 곽성현 목사는 “통합한 교회들 중에서 백석에 불만을 가진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총회 ‘개혁’을 명분으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제로 참여해보니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더라. 통합했다면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이해타산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갈라져 나가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홍태희 목사는 “우리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것이 통합의 목적이다. 자리다툼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면서 “복음을 전하고 목회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말했다. 

통합은 미래를 위한 결단
분열의 미래 물려줄 수 없어

이처럼 백석총회 안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다. 복음, 합동진리, 은혜, 연합, 개혁, 성경, 대신 등 출신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 물론 소위 말하는 ‘순수 백석’도 있다. 그런데 교단 통합을 결정했을 때는 ‘혈통’은 중요하지 않다. 홍태희 목사가 말한 것처럼 “구원과 직결된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구원 이외의 것, 성경 이외의 것은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민경배 박사의 주장처럼 “신학과 정체 그리고 경건이 다 같은데도 불구하고 갈라서면 그것은 분열이요 파벌이요 갈등”에 불과하다. 

1981년 교단 통합 당시 발표한 ‘합동 선언문’에는 상호존중을 분명하게 명시했다. 
“우리는 양 교단이 가졌던 정신과 노선을 비교, 서로를 이해하며 존중하여 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통합을 계속할 것임도 천명했다. 
“우리는 오늘의 교계에 환멸을 느끼며 유랑하는 군소교단과 전국 교회에게 넓은 문호를 개방하고 환영한다.”

통합을 교단의 역사적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특별히 분열을 거듭하는 많은 한국 장로교단이 주님의 진리 안에서 연합되는 이 역사적인 사명을 자각하며 이에 선구적 핵이 된다.”

40년 전에 작성된 ‘합동선언문’이지만 통합정신과 상생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이러한 통합 정신은 백석의 근간이 됐고, 백석총회는 크고 작은 통합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무엇보다 교단 통합은 ‘미래’를 위해 추진됐다. 목회가 어려워지는 시대를 예견한 장종현 목사는 “큰 물방울이 작은 물방울을 흡수하는 시대, 교단의 브랜드가 없이는 살아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교단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신학교’로 귀결된다. 어떤 교단 신학이 뒷받침 하느냐로 교단을 판단하는 시대가 열렸고, 백석은 그 미래를 빨리 내다봤다. 그리고 ‘백석’을 향한 러브콜은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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