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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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0.06.3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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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믿음의 중심을 잡고 살자 / 시편 14:1~3 / 찬송: 546

대부분의 사물은 중심을 잃으면 스스로 온전히 설 수 없습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사람들 역시 자신의 이성과 기분과 감정과 환경과 여건에 따라 이리저리 방향도 없이 살아갑니다. 중심 없이 자신의 편의대로 치우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중략)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며 복음의 향기며 생명의 편지입니다. 우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2:13)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에 보여줘야 합니다. 더불어 성도는 구별됨으로 세상의 모범이자 삶의 표준이고 지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만약 성도마저 중심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의와 선이 되지 못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삶을 산다면, 세상은 소망 없이 더욱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저울에 달아보시고 다림줄을 잡고 성도 곁에 계십니다.

사람들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혼돈하고 흔들리는 이 시대에 우리 성도들만이라도 믿음의 중심을 잡고 치우침이 없는 온전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안에서 중심을 잡고 치우침이 없는 온전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최도경 목사 / 송탄평화교회

 

화요일 / 소돔과 고모라 / 창세기 18:22~33 / 찬송: 290

본문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러 오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만나셔서 대화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심에 대한 아브라함의 못 마땅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 신에 대한 태도를 보면 신을 노하지 않게 예의와 정성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 아버지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두려운 분이시고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심판자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표적인 본질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를 보면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는 어떤 내용의 이야기든지, 하나님께 감히 아뢸 수 있고, 용납되고 설득되고 타협하는 하나님과의 인격과 인격의 만남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사는 소돔땅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 롯을 걱정하며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아브라함의 간청은 의인 20명까지 내려가고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의인 열 사람까지 양보하십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고 맙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귀중하며 위대한가를 말씀해줍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죄인 된 우리를 자녀삼아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살리는 사명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잘 감당케 하옵소서.

정종현 목사 / 신애교회

 

수요일 / 죽었거든, 어찌하여! / 골로새서 2:20~23 / 찬송: 465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차별화된 삶을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시대적으로 감각이 떨어지는 고백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날마다 죽노라는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나”(20)

세상의 초등학문이란 세상의 기본적인 원리와 요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인간의 기본적인 원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인간은 먹어야 산다?’ 그런데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먹고 안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먹은 만큼 늙어 있고 병들어 있습니다. 죽은 자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죽어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를 사용하십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라는 말씀은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셔서 새롭게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규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답게 날마다 세상에 대하여는 죽고 주님 안에서 사는 믿음의 백성들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믿는 자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주님 / 시편 91:1~16 / 찬송: 382

중국 우한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있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접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느끼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믿는 자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주님은 첫째로, 자녀인 성도를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보호하십니다.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숨기시는 피난처요, 대적들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존재도 접근할 수 없는 지존자, 그 무엇도 대적할 수 없는 전능자, 그리고 스스로 계신 분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보호하십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여기에서 날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함으로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위험과 공포로부터 보호하십니다.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5절에 공포6절에 두려움입니다.

둘째로,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을 약속하셨고, 간구함에 응답해 주시고, 환난 당할 때에 함께하시어 영화롭게(존귀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만족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의 결과는 믿는 자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주님이 평안의 열매를 얻게 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믿는 자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주님을 드러내는 인내의 삶 되게 하소서.

김응열 목사 / 군포평안교회

 

금요일 / 빛의 열매 / 에베소서 5:8~9 / 찬송: 289

성경에는 과수원 이야기와 열매 이야기가 자주 언급됩니다. 과수원에서는 사과, , 포도, 복숭아 등 풍요의 열매를 맺지만, 성도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예수님은 산상 설교에서 성도를 빛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빛이라고 한 것은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행으로 이 어둠의 세계를 비추어야 합니다. 과수원에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다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릴 때 얼마나 보기에 좋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열매는 성도의 착하고 선한 행실입니다. 이런 열매는 과수원에서는 볼 수 없는 열매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람만이 맺을 수 있는 의로운 행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또한 진실이라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진실은 성도의 생명입니다. 거짓이 어두움이라면 진실은 틀림없는 빛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꿈에라도 거짓을 버리며, 농담이라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늘 외쳤습니다. 진실은 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꼭 맺어야 할 빛의 열매입니다. 착하고 선한 행실로 빛의 열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 맺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하나님. 착함의 열매요, 의로움의 열매요, 진실함의 열매, 빛의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정권 목사 / 주암햇빛교회

 

토요일 / 차별하지 말라 / 야고보서 2:1~13 / 찬송: 220

사람들은 살면서 언제 가장 큰 분노를 느낄 때는 바로 차별을 받을 때입니다.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이 아닌 출신이나 학벌로. 또는 경제적 차이로 차별대우를 받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함을 받고 한 형제자매가 된 교회 안에서도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교회 안의 차별에 대해서 강하게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까? 바로 우리 모두가 차별 없이 구원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서로 차별한다는 것은 죄입니다.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9) 서로의 외모로, 옷차림으로, 경제적 차이로 차별하지 마십시오. 가족이었다면 차별하겠습니까? 오히려 긍휼히 여깁니다. 차별하고 비판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이미 남이라고 생각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판단하고 차별하면 우리 또한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의 외모나 형편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 차별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외모나 형편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차별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차별이 아닌 사랑과 긍휼로 다가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비판과 정죄가 아닌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품어주게 하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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