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선언(18) (1531년)
상태바
기독교 신앙선언(18) (1531년)
  • 주도홍 교수
  • 승인 2020.06.30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97

서약의 성례

세례를 받을 때 시각, 청각, 감각이 함께 작동하여, 세례자를 믿음의 길로 인도한다. 보고, 듣고, 만지며, 느끼면서, 인간의 고삐 풀린 욕망을 제어하면서, 사람의 영혼과 믿음을 인도하고 성장하게 한다. 7. 성례는 서약을 대체하는데, 라틴어 사크라멘트는 서약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인 교회 공동체는 거룩한 한 백성으로, 이것을 깨뜨리는 자는 공동체의 맹세를 어기는 자이다. 성도는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성례적으로 먹으면서 거룩한 교제의 공동체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된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부인할 때 성도는 언약을 깨뜨리는 자가 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것은 나의 몸이다’(고전 11:24)라는 말씀을 향한 우리의 인식은 분명해야 한다. 실질적 또는 문자적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상징적으로, 성례적으로, 의역하든지 아니면 비유적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는 말씀은 ‘이것은 내 몸의 성례이다’로, 또는 ‘이것은 나의 성례적 또는 신비적 몸이다’로 이해해야 한다. 

 

천국의 잔치

츠빙글리의 성찬을 향한 서술은 천국 잔치를 맛본 자의 모습을 넉넉히 제시한다.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는 한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인문주의의 차가운 합리주의 틀에 갇혀 있지도 않고, 결코 딱딱하고 밋밋하지도 않다. 그 묘사가 신비에 이를 정도로 풍성하며 넉넉하고 극적이며 최상의 영적 상태로 끌어 올려진다. 츠빙글리의 성찬 이해는 구원받은 성도의 풍요로운 영적 세계를 보여주며, 성도가 누리는 구원의 상태가 과연 어떤 자리인지를 넉넉히 상상하게 한다. 츠빙글리의 성찬 묘사는 거룩함과 영적 풍성함을 보여주면서도, 지켜야 할 신학적 선을 넘어서지 않는 절제도 잃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츠빙글리는 두 가지를 강조하며 글을 마감한다. 첫째, 성례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고 설명한 사람은 자신이 처음이다. 둘째, 가톨릭교회와 루터교회의 성례 이해는 모순적인데, 그들이야말로 무신론적이다. 

 

츠빙글리의 성찬론을 마감하며

츠빙글리의 성찬론을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좌파의 합리주의 영향을 받은 메마른 기념설 또는 상징설로 일컫는데, 츠빙글리의 성례론은 훨씬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어 이에 동의할 수 없다. 츠빙글리의 성찬론은 그 자신이 그토록 강조한 ‘영적이며 성례적’ 성찬론으로 묘사함이 바르다. 영적, 성례적 성찬론은 기념설과 상징설로 지칭하기보다는 언제나 성령 안에서 천국 잔치를 연상시키는 생동감이 넘치는 풍성한 감사의 예식을 극적으로 감각적으로 신비적으로 보여준다. 성례의 영적 풍요가 천국을 사모하게 하고 성도의 입술에 찬송이 넘쳐나게 만든다. 제2의 종교개혁자이며, ‘개혁교회의 아버지’ 츠빙글리의 성찬론을 당시 주류였던 루터의 신학의 관점에서 떠나, 개혁교회의 원산지 스위스의 종교개혁 사상을 역사적으로 한국교회가 바르게 이해할 때, 츠빙글리가 강조하는 ‘성령 안에서’ 영적 부흥을 맛보며, 보다 생동감 넘치는 개혁신학을 전개하리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