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분명히 크리스천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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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분명히 크리스천이시라고?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0.06.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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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 보니 까맣게 잊고 있던 원룸 계약만료가 다가왔다. 매달 땅 속에 파묻는 듯한 월세 수십만 원이 아까워 다음 거처는 전셋집으로 구하기로 맘을 먹었다. 중소기업청년대출의 한도는 1억 원. 이 정도면 호사스럽진 못해도 독거 청년 한 몸 여유롭게 눕힐 공간을 찾는 데는 충분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건 아직도 촌티를 벗지 못한 기자의 순수한 착각이었다. 

대출이 가능한 집을 찾는 것부터가 숙제였다. 겨우 금액이 맞는 집을 찾아 설레는 맘으로 문을 여니 창고인지 집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공간이 기자를 기다린다. 침대, 책상, 책장, 그리고 또.. 아무리 머릿속에서 가구를 이리 놨다 저리 놨다 시뮬레이션을 굴려 봐도 대책이 안 선다. 결국 나도 못할 걸 알고 너도 안 올 걸 아는 바로 그 인사, 조만간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겸연쩍게 돌아섰다. 서울에서 전셋집 한 채 구하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그런데 뉴스 속 세상은 별천지다. 모 연예인이 부동산 시세 차익으로 4년 만에 40억 원을 벌었단다. 또 다른 연예인은 26억 원 대출을 받아 37억 원의 빌딩을 매입하고는 4년 후 60억 원에 팔아치웠다. 이제 어떤 연예인이 더 부동산 투자의 탈을 쓴 투기를 잘 하는지 순위를 매기는 기사까지 등장한다.

연예인들이 불로소득 부동산 투기에 앞장서고 있는 점만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입맛을 씁쓸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그들에겐 푼돈일 1억으로 집을 구해보겠다고 아등바등 땀 흘리는 내 모습이 딱해 보여서만은 아니다. 그 연예인들의 명단에서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당당히 자신을 소개했던 이들의 이름이 눈에 띄어서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성경말씀이 무색하다. 소박하게 몸 눕힐 공간 하나만을 바랐던 비루한 세입자들은 오늘도 눈물을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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