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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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셋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0.06.1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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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 에베소서 3:14~19 / 찬송: 93

사도 바울은 에베소라는 지역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지역에 에베소교회를 세우고, 큰 규모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러나 사도 자신처럼 교회가 환란을 당할 때, 성도들이 영적으로 낙심할까 염려했습니다. 본문은 교회와 성도가 앞으로 당할 환란과 핍박에서 영적으로 승리하기를 바라며 사도 바울은 간절히 주님께 무릎 꿇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첫 번째, 성령을 통하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것으로 내면을 가득 채우기를 원하지만 성도들의 속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져야 합니다.

두 번째,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 가운데 계시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마음과 생각에 가득차게 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으로서 영혼에 가득 채워야 할 것은 예수님입니다.

세 번째,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기초가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정착해야 할 곳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만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충만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 충만이 성도 가운데 함께하시면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부요함과 능력이 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영적 온전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최도경 목사 / 송탄평화교회

 

화요일 / 믿음의 근거 / 창세기 17:1~12 / 찬송: 436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며 그의 믿음을 높이 평가합니다. 믿음은 우리 못난 인생들을 돌려놓으시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창세기 17장에서도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다 할 때에 아브라함은 웃습니다(16, 17) 이런 내용들을 볼 때 아브라함의 믿음의 정도와 크기가 생각보다 깊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갈대아 우르에서 믿음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하나님께 붙들려 끌려온 인생이요 그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갈과의 사건 이후 13년 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불신에 대한 책망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는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함은,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심판과 멸망을 자초한 소망이 없는 인류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첫 사건이 아브라함을 부르심이요, 축복을 받을 상황이 아님에도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주심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결심이 믿음의 근거가 됨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믿음 없음과 정함이 없는 삶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며 은혜로 채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정종현 목사 / 신애교회

 

수요일 / 복음의 능력 / 데살로니가전서 1:1~5 / 찬송: 257

데살로니가서는 바울 서신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된 서신입니다.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머물고 있을 때 데살로니가교회의 소식을 디모데로부터 듣게 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인하여 세워진 데살로니가교회이었지만 유대인들의 극심한 방해로 인하여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교회들에 비하여 많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였고 성도들 대부분이 이방인들로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초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환난과 핍박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그대로 나타난 교회였습니다.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본문 5).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에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주셨습니다(요일 5:4~5). 말뿐만이 아닌 믿음으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로서 그 사랑으로 인하여 수고로움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함임을 알고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주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끝까지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먼저 간대로, 다시 온다(언어의 상대성) / 잠언 15:1~4 / 찬송: 212

산꼭대기에서 우렁찬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처럼, 말은 누군가가 뱉은 대로 상대방에게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 점점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삶의 미소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서 나오는 언어들이 이기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자신의 생각이 가득 채워진 말들로 상대방에게 아픔을 주는 경우가 생깁니다. 사람의 본질인 주님을 닮은 삶의 언어, 생명을 살리는 언어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본문은 지혜 있는 사람과 미련한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면서 우리에게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말씀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의 말은 분노를 쉬게(수그러들게) 하며, 지식을 선히 베풀며, 치료하는 말(온순한 혀)을 합니다. 반대로 미련한 사람의 말은 노를 격동하게 하며, 미련한 것을 쏟아내며,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자신이 사용한 좋은 말, 기쁨의 말이 생명의 언어가 되어 자신이 건강하고, 타인도 기쁨이 되며, 사회가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되새김질하는 삶으로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생명을 살리는 믿음의 언어로 자신과 이웃이 주님 안에서 기뻐하게 하소서.

김응열 목사 / 군포평안교회

 

금요일 / 넉넉함과 자족함의 은혜 / 신명기 2:26~37 / 찬송: 301

사람은 얼마나 소유하면 만족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더 많이라고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소유하면 만족하고, 이웃보다 내가 더 많이 소유하면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많이 갖거나 자기 것을 지키려는 것으로 만족을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러한 방식의 만족을 추구하다가 결국 좌절합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은 이렇게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했지만, 그것이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했기에 교만하지 않았고, 암몬 족속의 땅은 조금도 넘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마음껏 누리되,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것은 절대 넘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내 힘으로 어떻게든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에 집착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자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광야에서 40년간 매일 주어지는 만나와 메추라기에 자족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기에 더 갖고자 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자족하는 마음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 갖춰야 할 중요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의 소중함과 충분함을 인정하고 기뻐하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넉넉한 마음과 자족하는 태도로 주시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권 목사 / 주암햇빛교회

 

토요일 / 순종으로 반응하라 / 사무엘상 15:22~23 / 찬송: 449

나는 누구에게 순종하는가? 하나님이라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게 더 순종할 때가 많습니다. 생활수준이 올라갈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못 먹어서 든 병이 많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이 먹어 병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못 먹어 든 병은 잘 먹으면 낫지만, 잘 먹어서 든 병은 명의도 못 고칩니다. 지금 현대인들은 잘 먹고, 많이 먹어 병들어 있습니다. 대부분 과잉공급으로 온 난치병입니다. 신앙생활도 동일합니다.

, 말씀을 몰라서 병든 성도와 아는 것은 많은데 병든 성도입니다. 전자는 말씀을 듣고 진리를 알게 되면 낫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많이 아는 것이 독이 된 경우로 대부분 영적 난치병입니다. 교회들마다 성경공부에 목숨을 걸지만 순종 없는 공급은 영적 난치병 환자만을 양산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후 아담과 하와는 곧 눈이 밝아집니다. , 선과 악을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대로 살면 가장 행복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후 하나님의 결정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결정을 이루려고 합니다. 자기 기준의 또 다른 말은 고집입니다. 내 판단이 고개를 들 때부터 죄는 시작됩니다. 성경공부가 중요하지만 순종 없는 말씀의 과잉공급은 위험합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순종한 것만이 믿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말씀에 조건 없는 순종으로 반응할 수 있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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