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위생적인 것이 좋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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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위생적인 것이 좋기만 할까?
  • 송태호 원장
  • 승인 2020.06.16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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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 송태호의 건강한 삶 행복한 신앙-29

60~70년대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사람들은 기억이 날 것이다. 국민학교 입학식 때 처음 보는 급우들 중 깨끗한 옷에 누런 코를 흘리며 가슴에 이름표와 같이 손수건을 덧대 연신 코를 닦아내던 풍경 말이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모두 비염이나 축농증으로 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을 것인데, 당시에 그런 친구들이 병원 근처에라도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 구석에서 뭐가 그리 재미 있었는지 놀다가 집에 가 흙으로 더러워진 옷 때문에 엄마에게 야단 맞고 옷이 헤졌기라도 했다면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들이 다 있을 것이다. 동네에서도 아무 이유도 없이 흙 장난을 하고 동네 뒷산으로 뛰어 다니던 일들, 연신 흘러내리는 누런 콧물을 닦아가면서도 친구들과 놀던 일도 많았지만, 그 친구들 중 축농증이나 비염이 계속되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 뿐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흡연에 관대했던 시절, 집안 뿐 아니라 실내, 버스 등 어느 곳에서든지 어른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많았는데도 지금은 흔한 아토피도 기침을 달고 사는 천식도 당시에는 보기 힘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해가 안 가는 놀라운 일 중의 하나는 급격한 공장의 증가로 도심에 항상 자욱했던 스모그 속에서도 어느 누구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개념도 생소했던 ‘알러지’ 는 동네의 길이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아파트 생활을 하고 친환경을 부르짖게 되면서부터 늘어나기 시작했고, 아토피와 천식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아픈 것은 열이 심하게 나는 감기나 배앓이 정도였다. 그 때도 해열제 몇 알이면 거뜬하게 이기고 몸 컨디션이 조금만 좋아져도 친구들과 나가서 놀고 싶어했던 기억이 난다. 

알러지는 아니지만 바이러스 감염병의 일종인 A형간염은 어렸을 때 앓으면 심한 열감기나 장염의 형태로 나타난다. 물론 거의 전부 후유증 없이 완치된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앓게 되면 85% 정도는 완쾌되지만 나이 먹어 걸릴수록 간 이식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전격성간염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A형 간염의 항체 보유 정도를 보면, 흙장난이 일상이었던 1960년대 이전 출생자들은 거의 모두 항체를 가지고 있는 반면 1970년대 이후의 출생자들에서는 자연적인 항체를 가진 경우가 드물다. 50대의 환자들 중 A형 간염 항체가 없는 사람들에게 ‘귀하게 자라셨나 봅니다’라고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다.

‘위생가설(hygiene hyphothesis)’이라는 이론이 있다.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이 오히려 면역체계의 정상적인 발달을 막아 알레르기와 감염병을 증가시킨다는 이론이다. 선진국에서 많은 아토피와 천식이 후진국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는 현상에서 출발한 가설이다. 아주 심한 알레르기를 가진 환자에게 이 가설을 바탕으로 기생충을 감염시키는 치료를 하였더니 알레르기가 좋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심한 아토피를 가진 쥐에게 유산균을 투여하였더니 아토피가 좋아졌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흙장난을 하던 학교 운동장은 친환경소재라는 우레탄으로 덮였다. 아파트 놀이터도 우레탄으로 덮여 이젠 흙장난을 할 장소가 없다. 황당하게도 아이들의 위생과 건강을 위해 깐 우레탄은 납으로 오염되어 있어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깨끗한 사회 환경은 분명히 건강에 좋은 것이지만, 아직도 인류의 유전자는 바뀌지 않았다. 적당한 외부환경의 노출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정상 발달시키는 데 중요하다. 위험 없이 면역을 획득하는 방법으로는 예방접종 이상은 없다.

지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Covid-19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불행하게도 현재 특효약이 없는 상태에서 기대볼 만한 것은 예방접종의 발명뿐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책을 내려 주실 줄로 믿고 우리는 기도에 힘써야겠다.

내가 다니는 영안장로교회 근처의 아파트에는 아직도 흙과 모래로 만들어진 놀이터가 있다. 어느 볕 좋은 봄날 예배 후 교회 근처를 산책하다가 놀이터 귀퉁이에 자리를 펴고 앉은 우리 교회에 다니는 젊은 엄마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고, 모래 장난을 하면서 노는 유치원 또래의 아이들을 보고 나는 안식구인 집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아이들 말야! 잔 병 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겠는걸!”
송내과 원장·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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