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변화 아무도 몰라…예배도 ‘뉴노멀’ 맞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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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한 변화 아무도 몰라…예배도 ‘뉴노멀’ 맞이할 것”
  • 조성돈 교수
  • 승인 2020.06.1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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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상실 후 탄생한 ‘회당’처럼 “새로운 패러다임 등장 전망”
삶 속에서 신앙생활 당연하게 여기는 ‘말씀 중심’의 기독교 돼야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성돈 교수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전은 종교와 신앙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당시 중앙집권적인 체계를 갖추고 성전을 유일한 종교기관으로 삼았다. 당시의 예배 형태는 제사장들에 의해 드려지는 희생제사가 중심이었다. 이것은 사적으로 드려질 수 없는 것이었다. 제사장들에 의해 ‘성전’에서 드려져야 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종교는 철저히 성전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임재는 성막을 거쳐 이 성전에 실현됐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은 항상 이 성전을 그리워했다. 성전은 신앙적 공동체인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었다. 

 

무너진 성전과 새로 나타난 회당 전통

그런데 성전이 무너졌다. 이방민족에 의해서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무너진 것이다. 그 안에 있었던 거룩한 기물들은 노략질 당했고, 술자리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뿔뿔이 흩어져 포로로 잡혀갔다. 정치적 지도자뿐만 아니라 제사장들마저도 이 포로의 대열에 포함되었다. 이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 무너진 것이다. 이에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는 마른 뼈의 환상 가운데 이들은 ‘무덤’ 가운데 있다고 한다. 마른 뼈와 같아서 소망이 없어지고 멸절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펼쳐진다. 이 암담한 상황에서 이들은 진정한 이스라엘로 거듭난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우리는 누구냐?’는 질문을 시작한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 든 것이다. 포로로 끌려온 제사장들과 학자들이 이스라엘의 문서들을 가지고, 사람들의 입에서 내려오던 전승들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끌어 내었다. 이로써 이들은 ‘유대인’(Jews)이 되었고, 유대주의 내지는 유대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었다. 이는 성전에서 이루어졌던 제사 중심의 종교를 벗어나 말씀 중심의 종교로 거듭난 사건이었다. 이 가운데 회당이 탄생한다. 회당은 포로기 이전에 상상을 할 수 없는 형태였다. 성전과 회당은 너무나도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전과 비교하여 회당을 통해 하나님이 여신 가능성이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자. 

1. 접근성: 성전은 중앙집권적이었다. 왕권의 확립을 통해 이루어진 중앙집권적 체제에서 종교의 중앙집권을 이루어낸 형태가 성전이다. 다윗의 인구조사를 통해 나타난 이스라엘 인구는 칼을 뺄 수 있는 자가 약 160만 명이었는데, 이는 베냐민과 레위 지파를 뺀 숫자였다. 그러면 적어도 3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계산해 볼 수 있는데 성전은 예루살렘 단 하나였다. 하나의 성전은 이루었지만 사람들은 성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회당은 모든 지역에 생겼다. 남자 성인 10명만 있으면 회당을 세울 수 있었다. 심지어 이스라엘 땅도 아닌 포로지에서 생긴 것을 보면 지역적 제한도 없었다. 즉, 유대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회당이 가능했고, 존재했었다고 볼 수 있다. 포로생활 가운데서도 유대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바로 회당으로 찾아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2. 종교생활: 성전은 이렇게 멀리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1년에 3번, 즉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의 절기 때 의무적으로 성전을 찾았다. 실제적인 종교생활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에 반해 회당에서는 안식일마다 모였다. 생활의 리듬과 함께 종교생활이 가능했다. 

3. 참여성: 성전에서 일반 백성들은 완전히 소외되었다. 그들은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제사에 참여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성전 건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뜰까지만 접근할 수 있었다. 즉, 자신들의 제물이 어떻게 제사로 드려지는지도 보지 못했다. 결국 성전에서는 대제사장을 필두로 하는 제사장들의 종교행위가 이루어졌다. 즉, 엘리트 종교행위가 이루어진 것이지 백성들의 종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회당에서는 종교전문가가 없었다. 유대 남성이라면 누구라도 회당에서 말씀을 펼쳐서 읽고 해석할 수 있었다. 즉, 회당 중심의 종교는 제사장이 아닌 평신도 중심이었다. 

4. 말씀 중심: 성전의 종교는 희생 제사 중심이었다. 주로 제사장에 의해서 가축들이 드려졌다. 이에 반해 회당의 종교는 말씀 중심이었다. 제사가 없어지고, 제사장 계급이 사라지고 나니 말씀이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5. 공동체: 성전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유대왕조가 가장 번성했던 다윗, 솔로몬 시기에 준비되고 건축되었다. 그 당시 가장 좋은 건축자재가 사용되었고, 최고의 장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성경은 이 과정과 결과를 자세히, 그리고 반복하여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이었다. 성경은 솔로몬이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을 다 형통하게 이루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왕의 성전이고 제사장들을 포함하는 주류 종교였다. 그러나 회당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언제 시작되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여러 방증을 통해서 포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즉, 성전을 잃어버린 이 백성들이 필요에 의해서 이방 땅 바벨론에서 만들어 간 것이다. 

6.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에 있었지만 그 역사는 오래 가지 못했다. 포로기를 포함한다고 해도 천 년 역사이다. 그러나 회당은 2,500년의 역사 가운데 유대인들의 애환과 함께 했다. 성전의 몰락을 두 차례나 경험하고,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이들이 유대인으로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이 회당 덕분이었다. 기독교의 예배도 결국 이 회당의 예식을 따라 갔다. 개신교의 말씀 중심도 결국 성전의 전통이 아니라 이 회당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7. 성전과 회당의 공존: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이 회복하며 제2성전을 건축한 이후에도 회당의 전통은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 중심의 종교를 다시 시작했지만, 회당을 버리지 않고 함께 가져갔다. ‘학사’ 에스라의 역할도 이러한 말씀 중심의 회당 전통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예배와 신앙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조성돈 교수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 말씀 중심의 회당 전통을 만들어 낸 과거 이스라엘 민족의 예를 들며, 코로나로 인해 한국교회가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공동체의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로나로 인해 예배와 신앙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조성돈 교수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 말씀 중심의 회당 전통을 만들어 낸 과거 이스라엘 민족의 예를 들며, 코로나로 인해 한국교회가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공동체의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도전

요즘 코로나19 시대를 경험하며 에스라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포로기 시대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있다. 외부세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의 파괴를 경험하고, 무덤과 같은 암담한 시기를 지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포로기에 성전 제사를 잃어버렸지만 회당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냈다. 오히려 이를 통해 말씀 중심적이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의 종교를 만들어냈다. 우리도 이처럼 온라인 예배를 통하여 새로운 제도를 경험하고 있다. 건물과 제도를 내려놓고 교회의 뉴노멀을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여기서 무엇이 나올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배워야 할 것은 성전을 회복하고도 회당의 제도와 함께 갔다는 점이다. 온라인 예배는 우리에게 아직 새로운 제도이고 아직 낯설은 환경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예배당으로 다시 돌아가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온, 오프라인의 공존은 필수가 되었다. 유튜브와 지상파가 함께 공존하게 된 것처럼 온, 오프라인의 공존 가운데 우리는 그에 맞는 새로운 예배의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당의 회복이 곧 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코로나19는 분명 위기였다. 특히 한국교회에는 커다란 도전이었다. 갑자기 전 교회가 모이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고, 온라인으로 주일예배를 생중계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런데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면 놀라운 기적이 있었다. 불과 몇 주 만에 갑자기 모든 교회들이 예배 생중계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것은 세계 어느 교회도, 다른 어떤 종교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포로기라는 뉴노멀 가운데 회당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낸 하나님의 섭리를 이 가운데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제 매체의 변경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콘텐츠로 현대인들에게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이루어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공동체의 새로운 모습 역시 이 가운데 발견해 나가기를 바란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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