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이웃과 연대하는 것, 그리스도인에겐 마땅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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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이웃과 연대하는 것, 그리스도인에겐 마땅한 일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6.11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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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⑰ - 약자의 존중이 하나님 공경이다(잠 14:31)

G20을 넘어 한 자릿수 강국 명단에 오르내리는 대한민국이지만 코로나가 초래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리가 그간 얼마나 위태롭게 살아오고 있었는지, 동시에 우리보다도 훨씬 어려운 이웃이 얼마나 많은지 한층 더 실감하게 됩니다. 

구약 시대 근동에서 신분과 재력을 갖지 못한 이들의 처지는 딱하기 이를 데 없었던 데 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안전망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 출발부터 열두 지파의 형제적 연합을 근간으로 삼았기에 지파들 간의 토지 명의이전을 금했고, 몇 년 간의 계약직 근무를 넘어 영속적인 농노화가 불가능하도록 명시했습니다. 토지를 담보로 한 대출에도 동족 간에는 이자 부과를 금지했고, 자발적으로 남의 종이 되었어도 희년 제도에 의해 정기적으로 자유민 신분으로 복귀할 수 있는 리셋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배려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자발적 순종 없이는 무용지물이 되곤 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우상 이방종교와 더불어 특권층의 끝을 모르는 축재와 경제 착취로 인한 신분계층의 영구화, 그리고 지파들 간의 종속지배를 그토록 격렬하게 꾸짖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잠언은 창의와 근면을 칭송하고 부의 긍정적 기능을 인정하는 동시에 부를 가진 이들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 역시 말씀해 주십니다. 부자에게는 친구들이 모여들지만 가난한 이들은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잠 14:20).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향해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것이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 14:21) 이웃을 멸시하는 행동이 죄라면 빈곤한 자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선이나 의로움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본문은 복되다고 표현합니다. 참 너그러운 말씀입니다. 선과 의는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인데 그것을 복을 주시는 통로로 쓰신다니 말입니다. 31절 말씀은 더 놀랍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잠 14:31) 인간이 지닌 끼리끼리 의식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 신앙의 힘입니다. 힘든 처지에 있는 이웃과 연대하는 것은 영적인 그리스도인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이어야 마땅합니다. 그래도 그 일이 어렵다면 그 연약한 이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 연약한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일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가난한 자에게 빌려주는 돈을 하나님께서 당신이 진 부채로 계상해 주시겠다니 이 이상의 연대감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영광을 입고 재림하실 때 모든 민족을 소환해 심판하시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마 25:34) 바로 잠언 14:21의 “복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굶주리셨을 때 그들이 음식을 드렸고 주께서 ‘빚을 갚지 못해’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가 드렸다고 칭찬하십니다. 그들이 의아해하며 말합니다. 저희가 언제 주님께 그런 일을 해드렸다고 하십니까? 주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약한 이들을 존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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