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초기 안이한 대응이 패착…기본재산 편입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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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초기 안이한 대응이 패착…기본재산 편입이 관건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0.05.27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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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회유지재단 10개 교회는 왜 강제 경매 위기에 처했나?

우리 교회 건물이 갑자기 강제 경매로 넘어가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장 통합 서울노회 산하 10개 교회가 강제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 상고심이 진행 중인 가운데 대법원의 판결에 교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교회 부도가 부른 강제 경매

황당한 사건의 시작은 서울노회유지재단에 교회 재산을 명의신탁했던 은성교회(통합 영등포노회)가 예배당 건축 중 부도가 나면서부터였다. 은성교회는 건축을 위해 수백억 대의 빚을 졌지만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2013년 경매에 넘어갔다. 460억 상당의 가치로 추정되던 은성교회 건축 부지는 주식회사 선우가 188억에 낙찰 받았다. 

문제는 예배할 곳을 잃은 은성교회 교인들이 공사 중인 교회 건물 지하에서 계속 예배를 드렸다는 점이다. 이에 부지를 획득한 선우는 재산권 집행을 위해 교회 건물 철거와 토지사용 지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14년 선우의 손을 들어 토지사용 지료 16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소송 이후 선우는 교회 지하에서 예배를 드리던 교인들과 합의해 부지를 확보했다. 해당 부지에서는 청년주택 사업이 새롭게 시작되면서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불똥이 서울노회유지재단으로 튀었다. 선우 측이 토지사용료 16억 원 지급 판결을 근거로 은성교회가 명의를 신탁했던 서울노회유지재단에 강제 경매를 신청한 것. 판결 이후 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토지 사용료 외에도 지연손해금 등이 붙어 금액은 64억 원으로 불어난 상황이었다. 

소속 10개 교회가 강제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한 서울노회유지재단은 부랴부랴 강제 경매 청구이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패소하며 쓴맛을 봤다. 현재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왜 법원은 업체의 손을 들었나

노회나 총회 산하에 설립된 유지재단은 교회 재산의 명의신탁 업무만을 담당한다. 유지재단은 공익 목적으로 명의만 관리할 뿐 실질적 소유권은 개 교회에 있다. 그런데 왜 서울노회유지재단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소속 교회들이 연대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은성교회 부도 당시 선우 측이 경매로 획득한 것은 건축 중이던 교회 건물을 제외한 토지였다. 때문에 법원은 토지 소유주와 건물 소유주가 다를 경우, 건물 소유주는 토지 소유주에게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법령에 의거, 지료 16억 원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유지재단은 명의신탁 기관에 불과할 뿐, 건물의 실소유주는 교회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경우 교회 건축이 완료되지 않아 유지재단으로의 소유권보존등기도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법원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2월 내려진 청구이의 소송에 대한 부산고등법원의 판결문에는 “은성교회와 원고(서울노회유지재단)는 이 사건 교회건물이 완성되면 원고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침으로써 이 사건 교회 건물도 이 사건 각 토지와 마찬가지로 원고에게 명의신탁하기로 약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판결문에서는 “원고가 이와 같은(명의신탁 관련) 사실을 밝혔다면… 원고에 대한 지료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선고됐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말한다. 

그럼에도 법원이 선우 측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왜일까. 역시 판결문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판결문은 “원고는 제1판결이 선고되기 전 법원에 명의신탁 주장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주장을 하지 않았다. 변론주의 원칙상 공격방어방법을 제출하지 아니함으로써 발생하는 불이익은 원칙적으로 그와 같은 공격방어방법을 제출하지 아니한 당사자에게 발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토지 사용료와 관련해 다퉜던 원심에서, 유지재단측이 본인들은 명의신탁기관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치지 않았다는 것. 충분한 방어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아 생긴 불이익은 당사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때문에 사건 초기 유지재단의 다소 안이한 대응이 지금의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본재산 편입하고 신속 대응해야

만약 대법원이 끝내 서울노회유지재단을 외면한다면 유지재단을 운영 중인 다른 총회와 노회에 미칠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회 재산을 목사 등 특정인이 사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공익적 역할을 맡아온 유지재단의 존재 목적에 손상이 가리란 우려도 있다. 

서울노회유지재단 안옥섭 이사장은 “교회가 유지재단에 명의신탁을 하는 이유는 교회 재산의 사유화를 막고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본인 교회의 일도 아닌 사건으로 강제 경매에 휘말린다면 어느 교회가 유지재단에 가입하려 하겠나. 이는 공익을 위해 탄생한 유지재단의 존재 이유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행히도 교회 예배당이 강제 경매로 넘어가게 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대종 안창삼 변호사는 “재단법인의 기본재산의 경우 강제 경매를 하려면 주무관청의 허가가 필요하다. 재단법인이 기본재산 처분을 위해 주무관청의 허가를 신청할 것인지 여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단법인의 의사에 달려 있다”면서 “만약 교회 부동산을 재단의 기본재산으로 편입했다면 강제경매절차가 진행된다 해도 충분히 명의신탁 부동산을 보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선 기본재산 편입과 함께 재단 차원의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다만 업체 측이 유지재단을 상대로 예금채권 압류 및 추심까지 진행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시급해 보인다. 

이 사건을 지켜보는 타 교단 유지재단이사회 관계자는 “대법의 판결은 엄청난 파급력을 갖는다. 예장 통합이 보다 적극적인 대응으로 이 사건을 해결해서 교회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대처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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