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은 권력자 아닌 ‘비천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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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은 권력자 아닌 ‘비천한 사람들’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0.05.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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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⑮ - 기독교 전파의 불리한 상황들 ②

셋째, 초기 기독교는 사회적으로는 하층민 중심의 공동체였다는 점 또한 기독교 확장에 있어서 불리한 환경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6절 이하에서,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바울은,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통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점을 말하려는 의도였지만, 고린도교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신분을 드러낸 것이다. 

‘지혜(σοφοι)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란 학식 있는 자가 별로 없다는 점을, ‘능한 자(δυνατοι)가 별로 없다’는 권력 가진 자가 없다는 점을, ‘문벌(ευνενεις)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며’ 라는 말은 가문 좋은 이가 별로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 본문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 비천한 계층의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노예이거나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 하층계급의 자유인들, 다양한 국적을 가진 비 로마인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 후 100년 이상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재위기간 중에 활동했던 이교도 셀수스(Celsus)의  『진정한 말씀 The True Word』에서 “이자들(그리스도인들을 칭함, 필자 삽입)의 지령이란 이런 것들이다. ‘교육받은 자, 지혜로운 자, 유식한 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 우리에게 이런 능력이란 악과 같은 것들이다.’ 이 자들 스스로가 이런 사람들을 자기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이 자들은 어리석고, 멸시받고 바보스러운 사람들, 또 노예나 부녀자, 어린아이들만을 원하고, 또 이들에게나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기독교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다 하층계급의 사람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순교자 져스틴(Justine Martyr, c 100~165)은 당대의 최고의 학자였고, 사회적 위치나 지적인 탁월성을 대표하는 무리도 없지는 않았다. 비록 다양한 신분의 공동체였다 하더라도 하층의 인물들이 더 많았을 것이라는 점은 공통된 견해였다. 

넷째, 이 시기에는 공개적인 전도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4세기 이전까지 기독교는 탄압받는 집단이었고, 공개적인 회집이나 전도활동이 불가능했다. 이들은 공개되지 않는 곳에 모였고(행 12:10~17), 공개적으로 전도하지도 못했다. 선교에 대한 저명한 연구가인 노버트 브록스(Norbert Brox)는 초대교회에 선교명령이 없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랄만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문헌 속에는 전도에 대한 목회적 권고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메노나이트계 학자인 알란 클라이더(Alan Kreider) 또한 “초기 교부들의 글에서 복음전도를 권면하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한 가지 사례로 키프리아누스의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주교였던 키프리아누스는 자신의  『에드 꾸이리누스 Ad Quirinum』 제3권에 새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120항의 거룩한 교훈을 담고 있는데, 형제들끼리 서로 도와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은 있지만, 불신자들에게 전도를 촉구하는 내용은 단 한 구절도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도나 증거를 권하지 않았던 것은 공개적인 증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고 실제적으로 전도하지도 않았다. 초기 기독교는 이상과 같은 불리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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