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다섯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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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다섯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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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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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모욕과 비방을 이렇게 해결하자 / 열왕기하 19:1~7 / 찬송: 336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이스라엘을 위협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모욕하며 항복하도록 회유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말고 잠잠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에게 도움을 청하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억울하고 분한 모욕과 비방을 하나님 앞에 아뢰며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아픔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앗수르에 대해서도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은 여호와의 사자들에 의해 앗수르 군대는 죽임을 당했고 왕도 그의 신하의 손에 살해 당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항상 좋은 소리와 칭찬만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이유 없는 핍박과 어처구니없는 모욕과 비방의 말을 듣기도 합니다. 이럴 때 히스기야 왕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주님께 맡기고 세상적이고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 영적인 방법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음에도, 억울함과 모욕과 비방이 있음에도 잠잠하고 참으며 기도하는 것 또한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어떤 모욕과 비방과 불명예스런 일에도 그리스도인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 안에서 모든일이 해결되게 하옵소서.

최도경 목사 / 송탄평화교회

 

화요일 / 멜기세덱 / 창세기 14:13~24 / 찬송: 393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네 나라가 반란을 일으킨 다섯 나라를 진압하고 포로를 잡아 가는 중에 소돔성에 살았던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도 잡혀가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킨 318명을 데리고 가서 소돔을 비롯한 다섯 나라를 공격한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그 동맹군들을 쳐부수고 조카인 롯을 구출해 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살렘 왕 멜기세덱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살렘이란 말은 평화라는 뜻으로 멜기세덱은 평화의 왕으로 본문에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전장에서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이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께서 하신일 이라고 선포합니다(20).

세상의 승리는 보상이 따르지만 아브라함의 승리는 세상적인 것이 아님을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오히려 얻은 것에서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승리의 주체가 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승리는 적들을 무찌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시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간섭하시며 모든 일에 편들고 계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아브라함과 동일한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내 삶에 나 혼자가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살게 하옵소서.

정종현 목사 / 신애교회

 

수요일 /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 여호수아 1:1~9 / 찬송: 359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낸 모세의 시대는 지나가고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하여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가나안 땅 정복의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3).

모세에게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여호수아에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다른 계획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모세를 따라 광야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고 계심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믿고 의지하여 맡긴 사명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그 맹세를 자신을 통하여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6).

모세와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감사하며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이 땅에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삶의 자리에서 열매 되는 복음 / 골로새서 1:3~14 / 찬송: 89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남긴 양처(좋은 아내)를 만나면 행복하고, 악처(나쁜 아내)를 만나면 나처럼 철학자가 된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대단한 악처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를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이 어떤 아내, 어떤 남편을 만나도 행복하든지 아니면 유명해지든지, 다 좋은 삶이 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며, 확실한 것은 어떤 사람이든지 복음이신 예수님만 만나면 참된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 진정한 영적인 스타가 된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에 생겨난 이단인 영지주의와 유대주의에 교회가 혼란을 초래하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고 있다(9~12)고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위대한 능력에 대하여 거침없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영적인 꽃을 피우고, 신앙생활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 열매는 4~5절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골로새교회에서 핀 복음의 꽃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 피어 믿음, 소망, 사랑, 이와 같은 열매가 적극적으로 맺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합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 복음으로 영적인 열매를 맺게 하소서.

김응열 목사 / 군포평안교회

 

금요일 / 충성은 무엇인가? / 누가복음 19:11~27 / 찬송: 514

천국 비유 중에 은화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간 종에게 잘했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충성이란 신실과 진실함으로 어떠한 박해와 고난 중에도 변함이 없는 삶, 하박국 선지자처럼 궁핍 중에도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작은 일에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큰일에도 진실하지 못합니다. 노예로 종살이에 충성하고 감옥살이에도 충성한 진실한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나라에도 충성했습니다.

남에게 보이지 않는데서 잘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주인이 보고 있을 때는 잘하다가도 보지 아니할 때에는 잘 하지 아나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들리기 위한 기도보다 은밀한 기도가 참 기도요 거리에서 나팔 부는 구제보다 오른손이 주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제가 참 구제라 한 것도 사람이 보지 않는 데서 잘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충성입니다. 주인이 오실 때 칭찬하실 줄 믿고 교회를 위하여 끝까지 충성해야합니다. 끈까지 잘하는 것이 충성이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종으로 일생토록 충성했습니다. 안나는 과부된 지 84년 동안 예수를 만나기까지 성전에서 봉사했으니 끝까지 충성을 잘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기도

어떠한 박해와 고난 중에도 변함이 없는 믿음을 지키며 충성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정권 목사 / 주암햇빛교회

 

토요일 / 마른 뼈가 군대가 된다 / 에스겔 37:1~10 / 찬송: 354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고 이제 남유다도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곳에는 앙상한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이 뼈들이 살겠느냐?” 하나님의 질문은 우리의 이성적으로 경험적으로 생각해 보면 너무 허무맹랑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불신앙적인 생각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말은 어떻게 들리십니까?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분이 뼈로 사람을 다시 만드시는 것이 불가능하실까요? ‘내가 보기에는 희망이 없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떠하실까요? 죽은 나사로의 무덤의 돌을 옮기라 할 때 사람들은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 하며 조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 지났어도 말씀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가장 큰 죄는 도덕적인 죄. 윤리적인 죄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죄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십니까?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릴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힘들어하고 가망 없다고 하는 문제 앞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 같은 문제들이 살아나겠느냐!” 이때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한 줄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말씀으로 새롭게 하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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