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삯꾼” 품값을 받고 임시로 일하는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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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삯꾼” 품값을 받고 임시로 일하는 일꾼
  • 노경실 작가
  • 승인 2020.05.26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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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101

요한복음 10:12-15>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2020년 2월 23일부터 시작된 온라인 예배가 13주째가 되는 지난 주일. 드디어 부분적이나마 교회들은 현장 예배를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은 기독교 역사에 큰 글자로 기록될 만큼 중요한 일이다. 나도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바이러스 사태가 종식 선언된 상황이 아니라 교회의 지시에 따라 구역을 나누어서 절반만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예배 뒤에는 교회에서 ‘지역 살리기’의 심정으로 각 구역마다 나누어준 티켓을 들고 티켓에 적힌 식당을 찾아가 점심을 먹고, 커피도 나누었다. 교회 주변의 작은 가게들마다 어찌나 우리들을 반기는지!

“교회에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러 안 오니까 죽은 동네 같았어요.” “그동안 일요일마다 장사가 안 돼서 힘들었는데, 이제 괜찮아지겠죠?” “오죽하면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다 했다니까요, 호호호...” -웃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러나 내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기 전 무거운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슬픈 소식들이 내 귀에 여러 번 들어왔습니다. 성도들의 이탈 소식 등등...”  그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토요일 밤에 같은 구역 식구 한 분이 교회를 옮긴다는 연락을 나에게 했었다. 그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전도사님이 개척한 교회라 섬기고 싶고, 마침 집도 파주로 이사하기에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교회 옮기는 걸 가지고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사람들이 너무 내 교회, 내 교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교회는 장사하는 가게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내가 이단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같은 교단인데요.” 여하튼 그녀는 단 한마디도 지금까지 출석했던 교회나 구성원들에게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뒤, 또 한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어느 교회인지는 밝힐 수는 없고 -그녀는 말을 쏟아냈다. “거의 3달을 교회에 못 갔는데 어쩌면 담임 목사님이 성도 가정에 전화 한통 안 해주시죠? 성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병들었는지 밥은 굶지 않는지 걱정도 안 하나요? 자기 자식이라면 그렇게 하겠어요? 다른 교회 목사님들은 힘든 가정마다 작은 선물을 들고 찾아가서 집 앞에서 비대면으로 선 채 기도해주고 오시더라구요. 또, 집집마다 전화로 격려해주고요. 그런데 우리 목사님은 어떻게 전화 한 통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여기저기 집회다니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요? 자기 양떼들은 죽는지 사는지 관심도 없고! 내가 교회나 목자에게 관심이나 사랑을 받지 못할 정도로 못된 양인가요? 나는 교회에서 고아 신세가 된 것 같아요. 어쩌면 부자나 장로들과는 연락을 주고받을 겁니다! 오죽하면 내가 계산을 해봤어요. 우리 교회 출석 성도가 1,500명 정도 되는데 가구 수로 하면 1천 가구가 안 됩니다. 하루에 50 가구만 전화통화로 기도해주고, 안부를 물어줘도 시간이 남아요, 남아! 내가 하도 섭섭해서 알아봤더니 부목사님들한테 전화하라고 시켰다는데, 부목사님들도 전화 한 통 안 하더라구요. 교회에서 중요한 사람들하고만 통화하고요. 결국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양들은 죽어서나 알 거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급기야는 엉엉 울었다. 

요즘 양떼들은 과거의 양들과 상황이 매우 다르다. 혼자 사는 양들이 많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양들도 부지기수다. 바이러스 사태로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놓인 양들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웃과는 소통이 안 되는 시대이다. 그나마 교회의 공동체와 연결이 잘 되어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교회에서는 힘든 이야기를 더 못한다.

이럴 때에 목자들이 양들의 심정과 형편을 헤아려 위로격려해주면 얼마나 그 양들이 살아날까! 바이러스라는 이리와 경제불안이라는 늑대와 외로움이라는 곰과 마음의 병이라는 사자 등 온갖 맹수들이 공격해오는데 어찌 목자들은 ‘꾼(어떤 일, 특히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처럼 양들을 보살피지 않는가! 나 역시 오히려 불신자 벗들의 위로전화와 심지어 선물을 받았지만 목자에게서 전화 한 통 받지 못 한 채 3달을 지냈다. 양들이여, 울지 말라. 진짜 목자, 참 목자,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가자. 이사야의 울부짖음처럼 사람은 어차피 흙이요, 풀이요, 악이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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