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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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 공종은 기자
  • 승인 2020.05.26 0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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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창촌에서 자란 이슬-이은정 전도사 자매의 신앙고백

언니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동생은 가정 폭력 노출
입양보다 더 큰 사랑으로 두 자매 딸로 품고 키워

 

“다른 남자를 만나 집을 나갔던 엄마가 1년쯤 지난 후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어요. 한 남자를 데려와서는 함께 살겠다고 했고, 그때부터 기막힌 동거가 시작됐죠. 그 남자와 엄마, 그리고 아빠와 우리 5남매. 일곱 명이어야 했지만, 여덟 명이 함께 살게 된 거죠.”

서울 변두리 집창촌에서 태어난 이슬-이은정 전도사의 유년은 꿈에라도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으로 시작됐다.

# 꿈에라도 지우고 싶은 유년의 기억

엄마는 집창촌에서 일했다. ‘쟤네 엄마는 창녀’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지만, 떼버리고 싶다고 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집을 뛰쳐나와 도망치기 전까지 늘 발목을 붙잡았다. 언니는 그런 엄마에게 버림받았고, 계속되는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한 동생 이슬 씨는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온몸으로 날아드는 폭행의 발길질은 얼굴과 몸을 가리지 않았고, 부러진 이는 방치된 채 딸로 품어준 장동근 목사(오병이어교회)를 만나고서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천안으로 이사한 후 고등학교 1학년 때 여름방학으로 기억해요. 학교 수련회를 사흘 다녀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동네를 몇 바퀴 돌아봐도 가족들의 흔적이 없었어요.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엄마가 동생들을 데리고 도망갔다’는 말을 전해주었죠.”

그렇게 언니 이은정 전도사는 가족과 헤어졌고, 자식을 버리고 강원도로 야반도주를 한 엄마는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1년여를 친구들의 집을 돌아다니면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던 이 전도사는 그때 하나님 이름을 처음 불렀다.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찾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고 매달렸어요. ‘하나님, 갈 데가 없어요, 갈 곳을 알려주세요’라고 매일 기도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장동근 전도사님을 소개해줬어요.”

그냥 교회 전도사님을 만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은정 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장 전도사는 환한 웃음으로 이 씨를 딸로 받아주었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9년 6월.

“저를 가족으로, 딸로 받아주셨지만, 그냥 ‘방만 하나 내주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방과 침대, 책상 등 딸에게 주는 모든 것을 다 갖추어주셨고, 지금까지 21년째 딸로 지내고 있어요.”

장동근 목사 부부의 딸로 살아가는 이슬(왼쪽)-이은정 전도사 자매. “그레이스7을 통한 하나님의 선한 이끄심을 생생하게 경험한다”고 고백한다.
장동근 목사 부부의 딸로 살아가는 이슬(왼쪽)-이은정 전도사 자매. “그레이스7을 통한 하나님의 선한 이끄심을 생생하게 경험한다”고 고백한다.

# 고등학교 1학년에서야 시작한 한글 공부

동생 이슬 씨는 늘 구멍 나고 너덜너덜해진 신발을 신고 다녔다.
“빵 공장에서 하루 열여섯 시간 정도 서서 일하면 금세 신발 뒷굽에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새 신을 사주지 않아 두꺼운 종이 상자를 구겨 넣어서 신고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물에 젖으면 다시 갈아 넣고 갈아 넣고 했죠. 그나마 고정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집에서는 저 혼자밖에 없어서 학교도 가지 못하고 돈을 벌었어요.”

이렇게 번 돈이 한 달에 50만 원. 여덟 명이 이 돈으로 생활했다. 엄마 대신 집창촌 여성들의 속옷 빨래와 방 청소를 하던 13살 이슬 씨를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빵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소개했지만, 아침 6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계속되는 고된 일은 공부할 길을 막았고, 주인 또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이슬 씨를 애써 외면했다.

어린 딸이 돈을 벌어왔지만, 엄마나 아빠가 예뻐한 것도 아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던 부모는 그 돈으로 매일 술을 먹고 싸웠다.

“술만 마시면 서로 때리고 싸웠어요. 이상한 건 엄마가 데려온 그 아저씨가 엄마를 때려도 아빠가 말리지를 않았어요. 세 사람이 뒤엉켜 싸울 때면 술병이 날아다녔고 나를 때렸는데, 그때 그 아저씨가 나를 발로 차 앞니가 부러졌어요. 그래도 폭력은 계속 심해졌어요. 하루는 나를 죽인다며 보일러 기름을 내 몸에 붓고는 불을 지르기도 했어요. 아무도 의지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이슬 씨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입학’. 입학만 했을 뿐 졸업은 하지 못했다. 부모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던 어린 이슬 씨는 한글도 익히지 못한 채 열일곱이 돼버렸고,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나이가 돼서야 한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언니를 딸로 거두어 준 장동근 전도사가 직접 한글을 가르쳐주었고,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배울 수 있다는 게 좋기만 했다.

# 언니와 함께 목회자의 딸로 생활

엄마에게 버림받은 언니를 다시 만난 건 빵 공장에 있을 때, 2003년 정도였다. 천안의 한 전도사님 집에 있다는 언니가 찾아왔다. 너무 보고 싶었던 언니가 눈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었고, 습진으로 갈라지고 찢어진 이슬 씨의 작은 손을 잡으며 눈물을 쏟은 언니는 함께 천안으로 가자고 했다.

“언니를 따라가려고 집을 도망쳐 나왔어요. 거기서 장동근 목사(당시 전도사)님을 처음 만났는데, 저도 딸로 삼아주셨어요. 도망갈 때 신발이 없어서 다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갔었는데, 새 신과 새 옷을 사주시고 딸로 품어주셨죠. 말로 할 수 없이 기뻤는데 그냥 눈물만 흘렀어요.”

두 딸 모두 입양 절차를 밟으려면 부모나 친족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딸을 버리고 연락을 끊은 부모가 나타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장동근 목사 부부는 이슬, 이은정 이름 그대로 딸로 품었고, 언니는 웬만한 건 다 하는 전도사가, 동생은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요리밖에 없다”고 말하는 셰프가 됐다.

마음 아픈 건 두 자매만이 아니었다. 웃을 수 없었지만 3년 정도 지나자 웃을 수 있었고, 오병이어교회에서 한 사람 두 사람 자연스레 만나고 모여 일곱 명이 됐다. 마음이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서로의 아픔을 보았고, 꺼내기 힘든 속내를 나눌 수 있었다. 진심과 눈물로 공감하고 위로해주었고, 그 공감은 서로를 끈끈하게 의지하게 했다. 친자매들보다 더 친해졌고, 그러면서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가 됐다. 이 공동체를 보고 가까운 목사님이 ‘아둘람공동체’라고 이름해주었다.

“이제 내가 아파도 나를 지켜주고 위로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게 든든해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이끌어오신 일이고, 오병이어교회가 묶어준 사랑의 공동체 때문입니다.”

# 아둘람공동체가 시작하는 ‘그레이스7’

아둘람공동체가 8년 정도 준비한 일을 벌였다. 천안예술의전당 근처에 조만간 ‘그레이스7 파스타 카페’를 연다. 아버지 장동근 목사를 포함한 공동체 8명이 8년 동안 같은 꿈을 꾸면서 소망을 나누고 기도로 준비한 일이다. 이슬 씨의 파스타 솜씨는 이미 소문이 자자할 정도이지만, 그래도 오픈을 준비하며 다듬고 또 다듬는다. 선보일 메뉴도 결정하고 새 메뉴도 개발했다. 파스타 세 종류에 리조또 두 종류. 그리고 커피와 디저트를 판매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그레이스7은 문화공간과 십자가 갤러리로 운영된다. 문화공간에서는 이은정 전도사가 성인과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2층 십자가 갤러리는 공예작가이기도 한 장 목사의 십자가 작품 상설 전시와 작가들의 전시공간으로 오픈해 정마리아 전도사가 담당한다.

언니 이은정 전도사는 췌장의 90%가 망가진 데다 영양흡수장애를 앓고 있어 몸무게가 40킬로그램이 안 되는 동생 이슬 씨의 체력을 걱정한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꿈이 보이고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니까 정말 행복하다”고 이슬 씨는 말한다. 그리고 두 자매는 “하나님, 여기에서 우리가 쓰임 받게 해주세요”라고 매일 기도한다.

“그레이스7을 통한 하나님의 선한 이끄심을 봅니다. 그때는 하고 싶지 않았고 억지로 했던 빵과 파스타 만드는 일이 지금 여기서 선하게 사용됨을 보면서 더 힘을 냅니다. 바람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상처를 치유 받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만남을 통해 마음이 이어지고, 지친 사람들이 와서 쉼을 얻고 돌아가는 치유와 소통의 공간으로 그레이스7이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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