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고 고될지라도 언젠가는 의로움의 열매를 보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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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고 고될지라도 언젠가는 의로움의 열매를 보게 될 것”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5.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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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⑭ - 의인은 의의 씨앗을 뿌린다(잠 11:18)

잠언에서 의인을 언급한 구절들은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생각하고 읽으면 훨씬 생생하게 우리 마음에 다가옵니다. 일례로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잠 10:11)이라는 말씀을 들었다면 내 말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이감을 갖는 것, 오늘 누가 내 말을 듣고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상상하면서 어떻게 해야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그 말씀에 대한 최선의 반응입니다. 잠언 11:18~19 말씀은 우리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만한 소중한 대상을 알려주십니다.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의롭게 살라는 권면인 동시에 일상에서 의로움을 어떻게 대해야할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개역개정 본문에서 ‘뿌린다’로 번역된 단어는 어근상 ‘씨앗’과 관련되기에 ‘심는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이 동사는 팔을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동작의 형태가 아니라 열매를 거두려는 의도와 목적을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온다”(시 126:6)는 성실한 삶에 수반되는 고통과 그 결과로 얻게 될 수확의 기쁨을 대조함으로써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말씀입니다. 

동일한 동사를 사용한 전도서 11:6도 눈길을 끕니다. 아침저녁으로 씨를 뿌리라(심으라)는 전도자의 권면은 동일한 노력을 기울여도 어느 편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게 인생의 불확실성에 낙담하기보다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기대를 가지고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전 11:6).

의로운 삶에는 보상이 주어지고 악한 삶에는 처벌이 따른다는 하나님의 통치원리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그 원리에 근거해 선택하고 자원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은 시대의 이 조류를 타고 항해합니다. 사도신경으로 대표되는 교리적 내용만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건실하고 상식적인 윤리적 기준조차 비난받다보니 낙심하고 낙오하거나 대적하고 비방하는 자를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갑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하신 주님 말씀대로 되어가는 듯해 두렵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믿음을 통해 산다는 말씀을 붙들 수밖에 없습니다(합 2:4, 롬 1:17). 그 믿음이 잠언 11:18에 의를 뿌리는(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인생은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열매를 거두는 농사와도 같습니다. 악인은 악의 씨앗을, 의인은 의의 씨앗을 뿌립니다. 싹이 트고 잎이 달리는 동안은 둘 다 비슷해 보입니다. 심지어 악인의 밭이 더 푸르고 풍성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무엇을 심었는가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주신 곡식과 가라지 비유의 통렬한 메시지입니다(마 13:24~30). 하나님이 바라시는 성도의 모습은 오늘 내 삶의 현장에서 의로움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입니다. 그 씨가 작아 보여도, 뿌리기가 더디고 고될지라도, 언젠가는 의로움의 열매를 보게 되리라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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