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싸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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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싸운 이유
  • 송태호 원장
  • 승인 2020.05.1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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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 송태호의 건강한 삶 행복한 신앙-27

며칠 전 진료 중 환자와 다퉜다. 우리 병원이 처음인 환자는 수 개월 동안 목에 뭔가 있는 것 같다면서 이비인후과를 다녔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고 했다. 진찰을 해보니 역류성 식도염에 의한 목의 이물감으로 생각되어 환자에게 차근차근 생활습관에 대해 물었다. 예상대로 환자는 잦은 음주와 흡연을 하고 있었다. 나는 환자에게 음주와 흡연 때문이니 그것을 끊어야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약을 처방했는데 환자는 계속 큰 병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중간에 환자 말을 자르며 다시 한 번 음주와 흡연을 중단하고 치료해 보자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환자는 갑자기 자기 말을 다 안 듣는다며 화를 냈다. 나도 언성이 높아졌다. 내가 진찰한 결과로 환자에게 치료방법을 설명했는데 환자는 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환자를 보내고 난 후 마음이 착잡했다. 잘잘못을 떠나서 아마도 그 환자는 우리 병원에 다시는 안 올 것이다.

1. 평소 조절이 잘 안 되던 고혈압 환자가 정기적인 병원 방문에서 평소보다 지나치게 높은 혈압이 나왔다. 의사는 환자를 대기실에서 안정시킨 후 다시 혈압을 측정하였고 혈압이 정상이자 평소 복용하던 약물을 그대로 처방하였다. 갑자기 상승한 혈압에 대해 환자는 궁금해 했지만 의사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일시적이며 그럴 수도 있다는 말 이외에는 특별한 말이 없었다.

2. 평소 조절이 잘 되던 고혈압 환자가 정기적인 병원 방문에서 평소보다 높은 혈압이 나왔다. 의사는 환자를 대기실에서 안정시킨 후 다시 혈압을 측정하였고 혈압이 정상이자 지난 번 방문후부터 환자가 혈압이 변할 만한 요인이 있었는지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지난 달에 회사 업무가 고되었고 술자리도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체중도 수 kg의 증가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의사는 환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고혈압 환자의 생활습관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 놓은 후 계속 이런 식이라면 약의 용량을 더 올릴 수 밖에 없다는 최후 통첩을 한다. 바쁜 일과를 쪼개어 병원에 방문한 환자는 5분을 넘어 길어지는 의사의 말에 시계를 힐끔 쳐다보며 다음에는 이 말 많은 의사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의사의 말은 한쪽 귀로 흘린다.

이상은 흔히 볼 수 있는 진료실의 모습이다. 여러분은 의사가 1처럼 하는 것이 좋은가? 장면2처럼 하는 것이 좋은가? 열이면 아홉은 2가 바람직한 의사의 자세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환자의 자세는 1과 2중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 진료는 환자와 의사 양방간에 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 1의 경우 환자가 평소 의사의 말을 잘 지키지 않아서 말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고, 실제로 2의 경우의 환자가 병원을 바꾸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닌 것이다.

의사들의 진료방식은 잘 변하지 않는다. 말수가 적은 의사가 갑자기 살갑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상하게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믿음직한 의사도 있다. 이는 환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내가 진료하는 모든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하려 하지만 내 의견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면서 진료 결과를 탓하는 환자들을 볼 때에는 그야말로 애정이 식는다는 것을 느낀다. 

환자에 대한 애정이 식게되면 환자에 대한 잔소리가 줄어들게 된다. 혈압이 조절 안 되어도 혈당이 조절 안되어도 그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처방전만 발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환자(다른 병원으로 가주었으면 하는)가 줄기차게 나에게 오는가 하면 다른 의사를 찾아 떠나는 환자도 많은 걸 보면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환자가 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 믿을 수 있는 의사란 환자에게 관심을 게을리하지 않는 의사라는 사실을 환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주치의가 여러분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주치의가 여러분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생활을 하며 교우나 교역자에게 상처를 받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로 인하여 믿음생활이 흔들리는 경우도 봤다. 이런 경우에도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예수님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진 못하더라도, 사람에게 상처받은 것을 용서하는 나의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송내과 원장·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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