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은 통합과정 투명하게 공개했지만 대신은 많은 내용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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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통합과정 투명하게 공개했지만 대신은 많은 내용 ‘비공개’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0.04.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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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단 통합의 역사를 통해 본 백석의 미래 - (6) 왜 대신과의 통합은 끝까지 유지되지 못했을까? (상)

백석총회와 통합을 희망하는 교단은 꽤 많았다. 이미 통합을 이룬 개혁 장지동측, 예장 성경총회, 합동진리총회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교단들이 통합 의사를 타진했다. 그중에는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있는 총회도 있다.

통합을 제안한 이유는 역시 신학교 운영난 때문이었다. 신학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총회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학교를 가장 탄탄하게 운영하는 백석에 손을 내미는 교단들이 생겨난 것이다. 

창립 초기부터 통합의 역사를 이어온 백석총회는 상대 교단을 존중하는 통합에 최선을 다했다. 개혁과 성경, 합동진리와 통합할 때는 증경총회장들에 대한 예우를 갖추었다. 아무래도 교단 규모면에서 차이가 있다보니 동등한 통합조건을 다루지는 않았다. 통합을 선택한 교단들은 ‘백석’이라는 브랜드에 만족했다. 한동안 ‘대신’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때 “우리는 백석과 통합을 했는데 왜 대신총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서운할 수 있는 큰 교단과 작은 교단의 통합이었지만 2013년 이후 개혁, 성경, 합동진리와의 통합은 무난하게 이루어졌고, 교회들의 정착도 빨랐다. 실천신학대학원 ATA 과정을 거치면서 같은 ‘백석 동문’으로 자격도 갖추었다. 한 식구가 되어가는 수순을 천천히 밟아 나간 것이다. 

교단 창립 초기 통합에 참여한 연합과 은혜 측, 그리고  2013년과 2014년 백석과 함께 한 개혁, 성경, 합동진리는 모두 통합정신을 지키며 ‘하나의 총회’를 위해 힘을 모았다. 그런데 유독 수차례 통합을 추진하고 마지막까지 많은 것을 양보한 예장 대신과의 통합은 상처가 크게  남았다. 

대신과의 통합이 잘 안착되지 못한 책임은 사실상 대신측에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석은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모든 논의를 공개하고 동의를 구했다. 반면, 대신은 처음 결의를 유도하는 과정부터 과장과 허풍이 섞였다. 마지막까지 정확한 합의서가 공개되지도 않았다. 원래 대신 측 교회수도, 통합에 참여하는 교회수도 제대로 확인된 적이 없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교단 통합을 반대하는 그룹을 끝까지 설득하지 못한 것도 한몫 했다. 이들은 매번 통합을 반대했고, 자체적으로 살아가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2005년 이후부터는 통합논의가 나올 때마다 “사실상 흡수”라며 반대를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은 또 추진됐다. 2011년 마지막 통합논의가 수포로 돌아간 후 3년 만인 2014년이었다. 

통합을 먼저 제안한 쪽은 예장 대신이었다. 증경총회장 박재열 목사가 통합안을 들고 찾아왔다. 조건은 ‘대신백석’이라는 명칭 하나였다. 2014년 9월 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주고받은 것은 ‘대신백석’이라는 명칭이 전부였다. 

그런데 대신 제49회 총회에서는 “명칭은 예장 대신으로 하고 백석대학교신학대학원 교명을 대신신학대학원으로 하고 운영권까지 대신에 넘기며, 3년이 경과되면 재단까지 넘기라”고 결정했다. 여기에 “총대수를 5대 5로 동등하게 해서 공증을 받아오면 교단통합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총대들의 요구였다. 정말 황당하고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이 내용을 보도한 국민일보는 “예장 백석 입장에서는 대신측이 내건 조건이 다소 굴욕적”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전혀 합의되지 않은 내용이 대신 정기총회에서 통과되자 백석 증경총회장들은 화들짝 놀랐다. 증경총회장 홍태희 목사는 격한 반응을 보이며 “이런 통합은 있을 수 없다”고 강하게 반대했다. 

대신총회가 당당하게 교단 명칭은 ‘예장 대신으로 한다’고 결정한 데는 배경이 있다.  당시 총회장이 된 전광훈 목사가 백지 한 장을 흔들며 “싸인을 받아왔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 목사는 총대들에게 “이름 대신이죠, 교단 족보 다 대신이죠. 그리고 세번째 지금 여기요 싸인 받아왔습니다. 백석신대원을 총회에 기증하고 운영이사를 조직하여 운영권, 총장임명권, 교수임용권, 재정임명권 모든 전체를, 재단까지도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 학교 공짜로 줘도 운영할 사람이 그쪽 교단에는 없어요. 제가 볼 때는 우리 교단에서는요… 이 학교에서 영원히 재단이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김치선 혁명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호언 장담을 했다.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백석총회는 통합을 위해 마지막에는 명칭을 ‘대신으로 양보했다. 역사는 끝까지 합의하지 않았다. 단, ‘대신’을 쓰는 전제조건이 90% 이상 합류였다. 그런데 대신측 교회가 몇 교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지금 다시 예장 대신 제49회기 총회 회의록을 살펴보니 교회수에 대해 전광훈 목사가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우리 교단의 실세(실제 교세)에 대해 제가 파악을 해봤습니다. 2011년에 12개 없어졌습니다. 2012년 22개 없어졌습니다. 13년 27개 없어졌습니다. 계속 교회가 서른 개 가까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2,500개지요. 사실 주일날 건물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1,300개도 안 됩니다. 우리 교단이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교회 빼버리면, 그리고 1년에 30개씩 또 떨어집니다. 딱 10년 지나면요 1천 교회 이하로 떨어집니다. 교회(수) 천 개 떨어지면 종로5가 가면 군소교단 되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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