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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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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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2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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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그리스도의 향기 / 고린도후서 2:14~16 / 찬송 93장

삼라만상은 고유한 향기를 풍기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도 저마다 독특한 향기를 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다양하고 셀 수 없이 많은 향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향기를 오로지 코로만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귀로 감성으로 이성으로 영으로 상대가 풍기는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풍기는 향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생명의 예수님을 체험한 제자들은 온 예루살렘에 예수님의 향기를 풍겼습니다. 이전에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하며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행동했던 제자들이 변화된 후 온 이스라엘과 아시아와 유럽과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모든 각처에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가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지극히 인간 이성의 냄새만을 풍기던 자들이었지만 죄의 빚을 탕감 받고 구원까지 선물로 받았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하면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포로들을 끌고 입성하는 군대를 환영하며 그들은 신에게 제사 드리기 위해 향을 피웠습니다. 이 냄새를 승리한 군사들은 생명의 향기로 느끼지만 포로들은 사망의 냄새로 느낍니다. 본문의 향기는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망이나 생명의 향기를 경험하게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이제는 예수님 향기만을 풍기게 하옵소서.

최도경 목사 / 송탄평화교회

 

화요일 / 애굽으로 간 아브라함 / 창세기 12:10~20 / 찬송 : 375장

창세기 12장의 시작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기 고향을 떠나 순종하여 나아가는 믿음의 조상다운 면모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은 아브라함이 세겜과 벧엘과 아이를 통과한 후 기근을 만나자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버리고 자신의 결정을 따라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아브라함의 애굽행은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10절)라는 기근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의식주 문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러한 결정은 하나님께 엄청난 미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 취할 행동은 아닌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애굽행은 아내까지 누이라고 속여 목숨을 부지해 보겠다는, 아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저버린 한심하고도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이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로서의 부족함과 수치스러움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은,  그의 부족함과 불신앙이 아니라, 그 실수로 하나님께서 약속을 취소하시거나 중단하지 않고 약속을 책임지시며 끝까지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나의 확신이 아닌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약속하셨고 반드시 이루심을 아브라함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동일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나의 계획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깨닫게 하옵소서.

정종현 목사/신애교회

 

수요일 /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라! / 시편 91:1~13 / 찬송 432장

오늘 본문의 저자와 배경에 대한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자의 안전함과 구원함에 대한 기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수준 높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두려움과 공포감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술과 과학문명이 발달된 시대에 왜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살아갈 때 우리는 안전하게 보호받게 됩니다.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3절).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공중권세를 잡은 마귀의 세력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오직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천만인이 다 엎드러짐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7~8절).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1절). ‘은밀한 곳, 그늘 아래’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거한 자를 누가 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 품 안에 있는 자는 절대 안전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하나님만을 인생의 피난처로 삼고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말씀대로 살면 세상이 바뀐다 / 레위기 19:9~10 / 찬송 382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난한 이웃을 돕는 몇 가지 제도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매 3년마다 따로 모아 드리는 두 번째 십일조입니다. 신 14:28~29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렇게 삼 년마다 드리는 또 다른 십일조는 매년 드리는 정기 십일조와는 달리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 성격의 십일조입니다. 

또 하나는 신 24:19에 추수 때에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얼마를 남겨 놓는 아량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밭에서 곡식을 벨 때 곡식 묶음 하나를 잊고 왔으면, 다시 그것을 가지러 가지 말고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그대로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말씀 레 19:9~10에는 곡식을 거둘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추수에 관계되는 율법을 주심으로 이루어진 관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추수자들에게도 가난한 자들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오늘 말씀대로 살면 세상이 아름답게 바뀌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멋진 세상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메마른 세상을 향하여 주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나타내게 하소서.

김응열 목사 / 군포평안교회

 

금요일 / 그리스도인의 소망 / 빌립보서 1:20~21 / 찬송 316장

“위대한 희망은 위대한 인생을 만들어낸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소망이 있을 때 삶이 풍성해지고 소망이 사라질 때 절망이 오며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소망은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를 소망했습니다. 성도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죄에서 용서받은 자들로 죄와 상관없이 생활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부끄럽지 않게 사는 생활이 행복한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죽을 것을 각오하는 사람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생명을 걸고 싸우는 병사가 가장 용감하게 싸웁니다. 사자가 맹수의 왕자가 되는 것은 한번 싸우면 목숨을 걸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성경은 죽으면 산다고 합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었습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입니다. 믿음의 질문과 믿음의 해답과 믿음의 주제는 오직 예수입니다. 주님의 명령만 지킬 때 참된 신앙의 길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의 명령에만 순종하고 예수의 말씀만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삶에서 존귀하신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옵소서.

정권 목사 / 주암햇빛교회

 

토요일 / 탕자가 아닌 둘째 아들 / 누가복음 15:!1~32 / 찬송 295장

흔히 우리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을 ‘탕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탕자’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다만 그를 ‘둘째 아들’ 또는 ‘동생’이라고 합니다.

눅 15장은 ‘잃어버린 양에 대한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비유’이며 성경 전체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잘 나타난 곳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입니다. 아버지는 그를 “잃어버린 내 아들, 죽었다 살아 돌아온 아들”(24절)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의 형은 “탕자: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30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를 향해 한치의 망설임 없이 ‘탕자’라 합니다.

우리는 조금만 자신이 도덕적인 행위를 하면 자만감에 빠져 너무 쉽게 남을 정죄합니다. 하나님은 남편이 다섯 있었던 여인도, 유산을 달라하고 집 나간 둘째 아들도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종종 우리는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을 향해 쉽게 ‘사탄의 자녀’라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사탄이 인간을 창조한 적이 없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한 존재입니다. 즉, 존재론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모두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것입니다. 모두가 ‘탕자’라고 해도 그는 분명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내 안의 율법적인 시각을 고쳐주시고, 영혼 사랑의 주님 마음을 회복케 하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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