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주신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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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주신 잔
  • 김진홍 목사 금천교회 담임 / 금천설교아카데미 원장
  • 승인 2020.04.22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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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홍 목사의 목회와 설교 | 원 포인트 설교(하)

금천설교아카데미 김진홍 목사의 ‘목회와 설교’를 연재하면서 설교 준비 노하우와 다양한 설교 유형을 소개했다. 이번 주부터는 설교 유형에 따른 ‘예문 설교’를 연재함으로 설교 준비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네 번째 설교 예문은 원 포인트 설교다. 상-하 두번에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 주>

본문 : 요 18:1~11
주제 : ‌주님이 마실 잔이 무엇인가를 알게 한다.
명제 : ‌주님이 마신 잔은 오늘 내가 마실 잔이다.
목적 :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믿음을 지킨다. 
구성 : ‌원 포인트(이유를 말하고, 방법을 제시하고, 결과를 말한다)

C. 본문에서 받아야할 은혜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내어 놓으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1. 본문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잔”이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첫째, 아버지께서 주신 잔은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평생을 사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양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뜻이 먹고사는 양식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손과 발엔 대못이 박혔습니다. 옆구리는 창에 찔리셨습니다. 피를 쏟으셨습니다. 물을 쏟으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과 정신적인 죽음입니다. 영혼의 죽음입니다. 자존감의 죽음입니다. 자존심의 죽음입니다. 이런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아픔이 얼마나 컸나를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잘 압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잔을 앞에 놓고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이 기도를 보면 십자가라는 고통이 얼마나 컸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밤을 새면서 십자가에서 죽음이라는 잔을 옮겨 달라고 인간인 예수님은 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마음과 영혼에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마음에 허락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지만 예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어차피 사람은 한 번은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장 가치 있는 죽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가치가 있는 길은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길이어야 합니다. 

셋째, 오늘 나에게 주신 잔이 있습니다. 그것은 철저한 ‘사명감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명감’이란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의무가 있습니다. 직분을 잘 감당하려는 의무도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예배의 의무입니다. 코로나19로 성전 예배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성전 예배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가정에서 예배를 드려도 성전 예배처럼 준비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너무 준비 없이 속옷 차림으로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정말 성전 예배처럼 정해진 시간에 마음과 헌금을 준비하여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성전예배와 같은 마음회복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는 순교정신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승리하는 길입니다.   
* 순교자 주기철 목사 예화

2.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첫째, “내가 그니라”며 자신을 알려주었습니다. 죽이려고 자신을 찾는 무리들에게 “내가 그니라” 자신을 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자신을 잡아가라고 내어 놓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하신 행동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행동이 있으신가요? 

행동은 먼저 마음에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죽을 각오와 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을 각오와 결심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바람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바람은 풍랑이라는 결과를 동반합니다. 비바람을 일으킵니다. 

여러분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일사각오의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을 감동시키십니다. 그 믿음이 나를 축복의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내가 그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어떤 경우에도 비폭력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다의 위선을 보고 분노로 혈기의 칼을 뽑았습니다. 베드로의 이런 행동은 주님을 지키려는 충성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신앙은 순간의 감정이나 혈기로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분노는 영혼과 정신과 육체를 병들게 만들 뿐입니다. 분노가 절제되지 못할 때에 자신이 먼저 황폐해지는 것입니다. 분노는 불면증을 일으킵니다. 식욕을 빼앗아갑니다. 분노는 정신질환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분노는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다이너마이트가 되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왜 이렇게 감정이 앞섰을까요? 마태복음 26장 40~41절에 보면 원인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것이 베드로의 치명적 실수였습니다. 기도하자고 할 때 기도하지 않던 베드로는 문제를 만나자 감정이 앞섰습니다. 분노와 혈기가 앞섰습니다. 결국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주님께 책망만 들었습니다.  

먼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가는 길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기 전에 베드로처럼 행동부터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3.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본문은 “아버지께서 주신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죄로 지옥에 갈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전도하여 천국에 보내는 것입니다. 예비하신 영혼을 다 전도하여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먼저 구원을 받은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복음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해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지옥에 보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며 모든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잔을 믿음으로 받아 마시는 진정한 신앙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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