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위치에서 베풀 수 있는 온정 아끼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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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위치에서 베풀 수 있는 온정 아끼지 말아야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4.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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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⑩ -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증인이 되십니다(잠 6:1~5)

본문은 담보 혹은 보증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단지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해 잡히게 된” 즉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책임이 지워진 위기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가르쳐줍니다. 자신이 위험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면 채권자에게 서둘러 상황을 알리고(6:3) 자신부터 거기서 벗어날 길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밝히고 호소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서 선처를 베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을 거절할 정도로 마음이 굳어진 사람을 상대로는 친족과 이웃이 나서서 상황을 해결하고, 친족도 형편이 되지 않으면 공동체(마을) 전체가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는 것이 이스라엘의 버팀목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여기서 불쌍히 여기는 행동은 광범위한 선행을 가리키겠지만 구체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행동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즉 채무변제 가능성이 낮은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면 하나님께서 보증을 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돈거래라는 차디찬 영역에서도 개인에서 친족, 지역공동체를 넘어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로 연결되는 안전망을 보여줍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대가 없이 베풀어 줄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을 수는 없겠으나, 그만한 여유가 없다면 내게 꿔달라는 이웃의 요청에 성의껏 응하는 것이 차선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동족 간에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시지만 담보설정은 금하지 않습니다. 담보물은 채무자가 무책임해지지 못하게 막는 장치인 동시에 동정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키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다만 성경은 이웃에게 돈을 꾸어줄 때 그 집으로 따라 들어가 담보물을 받아오지 말고 담보물을 갖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 주라고 꼼꼼히 가르칩니다(신 24:10~11). 이웃에게 돈을 꾸어야 하는 심정, 집안에 들어가 살림살이 중 무엇인가를 집어 들고 나와야 하는 참담한 심정을 속에 눌러 담을 시간과 공간을 배려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채무자가 몹시 가난해 겉옷을 담보로 내놓은 경우는 그것을 집에 가져가 내버려두지 말고 해 질 때면 채무자에게 다시 돌려주어 담요처럼 입고 자게 해주어야 합니다. 채무자가 그 옷을 덮고 자면서 고마운 마음에 하나님 앞에서 그 채권자를 축복하면 그것이 그의 의로움이 된다니(신 24:12~13), 빌리는 자와 빌려주는 자 모두를 품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베풀 수 있는 대상에게 온정을 아끼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이 측면을 잘 이해합니다. 사랑, 배려, 희생은 고상한 덕목이고 그리스도적 가치의 핵심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들이 그러한 덕목을 위해 버거운 짐을 억지로 지도록 강요하지도 않으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빠진 이웃에게 냉담하고 가혹해지지 말아야 하는 만큼, 사랑을 제도로 경직시키는 폐해 역시 경계해야 합니다. 도움을 입는 이도 도움을 주는 자도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사는 존재들임을 기억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그만큼 더 구체적으로 우리 안에 실현될 것입니다. 선행을 베풀되 자신의 한계를 알고 위험을 피하는 것이 겸손이고 지혜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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