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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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 강석찬 목사
  • 승인 2020.04.08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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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인 T.S.엘리엇은 장편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하였는데, 그렇게 될 것 같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바이러스가 공포의 대상이 되어 온 세계를 공황 상태로 만들었는데, 4월에도 계속 확산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4월 19일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연장한다고 선언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사순절 고난주간을 제대로(?) 지키게 되었고, 부활절의 기쁨은 유보해야 한다. 불안한 마음들이다. 길을 나섰다가도 멀리에서 사람이 가까이 오면, 잠정적 무증상 환자로 의심하며 거리를 두며 비껴가기까지 되었다. 언제 누구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될지 모르게 되었다. 사람이 무섭다. 사람이 두렵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박멸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히려 바이러스 편에서 77억 인류는 광범위하고 깊은 잠재력을 가진 경쟁자 없는 유망한 시장(blue ocean)이라고 한다. 게다가 사람들은 소, 돼지, 닭 등 가축을 모아놓고 키우니 최고의 블루오션이라는 것이다. 이미 WHO는 팬데믹(pendemic)을 선언했다. 다른 나라들의 확산 소식에 우리나라는 괜찮다는 식의 안도감이나 안일함은 정말 위험한 자세이다. 정말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답답하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 앞에 앉아있다. 지옥이 어떤 곳일까? 단테는 ‘신곡’ 지옥 편에서, 지옥 입구에 쓰인 글귀를 “이곳에 오는 자여. 희망을 버릴지어다”라고 했다. 지옥은 희망이 없는 곳이란 뜻이다. 이미 경제가 곤두박질하고 있고, 자영업자들이 퍽퍽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공장이 멈추고, 관광업은 생지옥이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대사가 떠오른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3막 1장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이다. 햄릿의 실존적인 고민의 대사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인 것 같다.

우리 몸의 바이러스를 분석해 본다. 우리 몸에는 몸의 세포 수보다 10배 많은 약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종류는 1만 종에 이르고, 무게가 2kg이나 된다. 인간의 유전물질의 약 8%는 바이러스에서 얻는 것이다. ‘미생물의 힘’의 저자 버나드 딕슨은 인류에게 적이자 동지인 미생물을 ‘보이지 않는 권력자’라고 칭했다. 과학자들은 ‘미생물의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기 시작하면서, 미생물들이 한 사람의 성격, 두뇌, 지능, 나아가 지역, 국가의 문화 생성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우리 몸 속에 있는 미생물은 인간의 행·불행에 관여하는 실체이다. 자폐증, 우울증, 식이장애 등 신경정신질환의 원인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라고 밝혀지고 있다. 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세계에 퍼지며, 인류를 공포 안으로 이끌어 들어갔다. 어떻게 공포에서 벗어날까?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를 찾아가서 거기에서 해결의 비법을 얻어야 한다. 어떻게 사람에게 전파되었을까? 전파경로는 박쥐가 사람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박쥐에게 접근한 결과이다. 숲을 파괴하고, 깊은 밀림 속 동굴의 박쥐서식지를 사람이 찾아간 것이다. 동굴을 들쑤시고 “들짐승 먹어보자” 하며, 대도시 음식점에 공급하면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졌다. 이 과정이 반복되는 한, 바이러스나 세균은 블루오션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반전(反轉)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다른 생물을 짓밟고 파괴하여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After corona는 다시 After Christ가 되어야 한다. 복음(福音)이 답이다. 하나님 앞에 선 자로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게 살기, 예수를 바르게 믿고 따르기가 답이다. 이 사람은 공생공존(共生共存), 상생(相生)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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