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둘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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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둘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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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0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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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그리스도의 잔 / 마태복음 26:34~46 / 찬송: 150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죄인을 대신해서 고난 당하심과 죽으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의 잔을 두고 깊이 기도하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감당해야 할 잔을 두고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고 죽게 되었다”,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고난과 죽음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던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위대한 결단을 내리십니다.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그 잔을 마실 것을 확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거부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여 순종할 것을 다짐하십니다. 그 잔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임을 스스로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신 고난과 죽음의 결과를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 이루었다”(19:30).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감당해야 할 내 몫의 잔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나를 택하신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도를 행하며 그 잔을 거부하지 말고 기꺼이 그 잔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 이루었다고 할 때까지.

오늘의 기도

주님, 내가 감당해야 할 잔을 거부하지 않게 하옵소서.

최도경 목사 / 송탄평화교회

 

화요일 / 노아가 주는 교훈 / 창세기 9:18~27 / 찬송: 290

오늘 본문의 내용은 부끄러운 이야기로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노아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은 노아에 대하여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9장의 말씀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지라”(21)라며 술에 취하여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고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함이 저주를 받게 되는 대조적인 내용을 기록합니다.

노아의 지금까지의 삶은, 많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고 살아갈 때에도 그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인류를 심판하는 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심판 후에 새롭게 시작하는 인류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노아에 대하여 성경은 왜 이 부끄러운 내용을 기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노아의 교훈은, 인간은 모두가 죄인으로 하나님의 복 주심과 인도하심을 누릴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러한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집념인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의 실체를 알아 겸손해지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앞에 늘 무릎 꿇고 기도하며 이웃을 정죄하지 않게 하옵소서.

정종현 목사 / 신애교회

 

수요일 / 성경대로 역사하는 복음의 능력 / 고린도전서 15:1~8 / 찬송: 399

복음은 죄 가운데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들을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받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1~2).

복음은 기쁜 소식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신 그 약속이 성경대로 이루어져 십자가를 통하여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이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행하던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하셨습니다.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4). 이것이 가장 큰 기쁜 소식이 되어 죄와 사망의 법에서 고통당하던 죄인들을 살리는 구원의 복이 되었습니다.

복음만이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생명의 길입니다. ‘기쁜 소식은 전해질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쁜 소식을 날마다 전하는 복음의 전달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나를 기쁜 소식을 만방에 알리는 복음의 전달자로 써 주시옵소서! 아멘.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 시편 119:65~72 / 찬송: 33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쉼 없이 달려가던 인생 가운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 없이 앞만 보고 인생길을 가다가 더 빨라진 세월로 자신의 젊음과 꿈은 주름과 흰머리로 덮여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채찍이 자신의 삶에 닫기 전에는 전혀 여유를 갖지 못하고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살게 됩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 가족과 친구,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소중한 것을 다 잃어버린 후에 깨닫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현실 가운데 자신의 높임을 위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욕망이 절제 되지 못하고 달리는 속도에 넘어진 것입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오늘 본문 시편기자의 고백은 첫째, 고난은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고난은 자기 결점을 발견하게 하고, 고난은 생각을 깊게 만들고, 고난은 삶의 방향을 바르게 해줍니다. 둘째, 고난은 죄를 깨끗하게 합니다. 셋째, 고난은 성품을 새롭게 합니다. 고난은 겸손하게 하고, 고난은 인내심과 성실성을 길러 줍니다. 넷째, 고난은 신앙심을 깊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이 주는 어떤 부귀와 명예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은 고난이 사람에게 주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것은 가까이 오라는 신호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지혜의 삶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김응열 목사 / 군포평안교회

 

금요일 / 주님을 따르려면 / 마태복음 16:21~24 / 찬송: 448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예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영광을 기뻐하면서 짊어져야 합니다. 인내하면서 주님이 가신 길, 영광의 길을 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분명하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따르는 생활입니다.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자세에 대해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러면서 그 문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지만, 그 과정은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주님을 따르는 길은 쉽고 편안한 길이 아닙니다. 좁고 험난한 길, 자신을 죽이며 나아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 길을 따르려면 인생 전체를 거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을 각오하지 않으면 함께 할 수 없는 길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순교를 각오하며 주님을 따랐습니다. 지금도 순교자의 정신을 갖지 않고는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희생을 감수하며, 손해를 보더라도 헌신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주님의 길을 따르려면 주님의 뜻을 공유하며 같은 생각을 하며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주님을 따르는 길이 힘들고 어려워도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인 줄 믿습니다. 이 길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정권 목사 / 주암햇빛교회

 

토요일 / 현재의 고난을 넘어 / 로마서 8:18 / 찬송: 288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교회를 핍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났고 눈이 열렸습니다.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조금 아는 것입니다. 무지가 오해를 낳고 오해가 실패를 가져다줍니다. 신앙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대한 눈이 열려야 합니다(8:18). 예수님을 만난 바울의 가슴에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비범한 열정이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 중심을 둔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과의 극적인 만남을 가진 경험들이 있습니다.

분명 신앙의 열정은 하나님의 만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야 사명을 찾습니다. 사명이 없는 성도는 없습니다. 단 사명을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도 할 일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사명을 찾은 성도는 해야 할 일들이 보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시험 들 시간이 없고, 방황할 시간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명을 찾지 못한 신자들은 교회를 와도 할 일이 없고 시험 들 것 다 들고 방황할 것 다합니다.

많은 성도가 아픔 때문에 교회 오고 그것 때문에 기도합니다. 우리들의 아픔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리면 내가 아파했던 아픔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오늘의 기도

현재의 고난을 넘어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에 눈이 열리게 하옵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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