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인, ‘감추었던 만나’를 풍성하게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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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인, ‘감추었던 만나’를 풍성하게 받습니다
  • 장종현 목사
  • 승인 2020.04.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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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현 목사에게 듣는 ‘백석’ 정체성 - 이기는 그에게는 흰 돌을 주리라 1.백석의 의미⑪

성령의 전인 교회를 위해서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영적 생명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교회를 위해서 말씀을 주십니다. 본문 17절에서 사용된 ‘교회들에게’라는 복수형은 이 편지가 버가모 교회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모든 교회를 향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이기는’이라는 단어는 군사용어로 어떤 전투에서 한 번 이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전투에서 지속적으로 이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단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 맞서서 비장한 순교의 각오로 싸워서 이겨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6장 10~13절은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3~4절은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령한 투쟁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백석이신 그리스도께서 승리를 이미 얻었으므로 우리 백석인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백석인들이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한 계시로 믿고, 귀 있는 사람이 되어 그 말씀에 순종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다’라고 외칩니다. 인간의 이성과 체계를 가지고 신학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과 그 분의 뜻을 아는 것이 참된 신학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문적인 논의에 앞서 무릎 꿇고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머리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내려와 무릎까지 이어질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우리가 받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 자세히 기록된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하면서 먹은 양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본문은 하나님께서 종말을 사는 성도들에게 특별히 감추었던 만나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누룩이 들어간 떡, 즉 유교병을 먹었습니다. 애굽을 떠날 때 그들은 외식과 거짓을 뜻하는 누룩을 제거한 떡인 무교병을 먹어야 했습니다. 유교병은 부드럽고 식감이 있었지만, 무교병은 딱딱하고 맛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유교병을 버리고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만나를 한번도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 이름도 알지 못했던 그들은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지만 그 대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나라고 부른 것입니다. 만나는 ‘무엇인가?’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들은 만나를 생전 처음 보았고 맛보았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애굽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진 만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드러난 만나였습니다. 오직 그들만이 그 만나를 보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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