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이 세 불리기?” … 교단 창립부터 분열 회개하고 ‘하나됨’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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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이 세 불리기?” … 교단 창립부터 분열 회개하고 ‘하나됨’ 지향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0.04.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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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통합의 역사를 통해 본 백석의 미래 - (1) 교단 통합은 백석의 정체성

백석총회는 역사적으로 ‘통합’을 지향해왔다. 분열된 한국교회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사명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먼저 통합을 요구한 적은 없다. 그저 통합을 원하는 교단들이 내민 손을 잡았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백석은,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결단도 해야 했다. 교단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명칭’까지도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고 끝내 자리를 박차고 이탈한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조건 있는 통합’이거나 세상의 기준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희생’이기 때문이다. 통합에 대한 오해도 크다. 일각에서는 이번 구 대신의 이탈을 보면서 백석을 ‘강자(强者)’로 구 대신을 ‘약자(弱者)’로 표현했다. 또 누군가는 백석이 ‘세(勢)’를 키우기 위해 통합을 했다고도 한다. 과연 백석은 대신과의 통합으로 세가 늘어났을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통합을 지켜내지 못하고 이탈에 이탈을 거듭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명분이 있을까? 결국 분열은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 ‘교권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정치적 산물이다. 

본지는 총회의 42년 역사 속에서 추진된 통합 논의들을 살펴보고 백석총회의 정체성이기도 한 교단 통합이 어떻게 추진되어 왔는지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편집자 주>

 

1981년 연합 측과의 합동선언문에는 분열에 대한 회개와 인위적 수단으로 하나님의 통합을 가를 수 없음을 천명했다.
1981년 연합 측과의 합동선언문에는 분열에 대한 회개와 인위적 수단으로 하나님의 통합을 가를 수 없음을 천명했다.

백석의 역사는 ‘통합’의 역사다. 총회 설립 초기부터 신앙노선과 신학이 같은 교단 간 통합이 활발했다. 197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복음총회’로 시작된 교단의 역사는 이듬해인 1979년 합동 비주류 측인 함북노회와 평북노회가 가입했고, 1980년 교단 명칭을 ‘합동진리’로 바꾼 백석총회는 1981년 교단 창립 3년 만에 합동진리-연합(연합 측+은혜 측)의 통합을 이뤄내면서 “우리는 특별히 분열을 거듭하는 많은 한국 장로교단이 주님의 진리 안에서 연합되는 이 역사적인 사명을 자각하며 이에 선구적 핵이 된다”는 합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 기록된 것처럼 분열을 거듭한 장로교단들이 주님의 진리 안에서 연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한집 살이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통합이 안정될 즈음이면 늘 기득권을 내세우며 다시 교단을 가르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때마다 “같이 살자”고 설득하며 지금까지 통합정신을 지켜왔다. 

이후로 백석총회는 2013년 9월 총회에서 개혁 장지동 측과 통합을 이뤄냈고, 2014년 5월 개혁 광주 측, 2014년 9월 예장 성경 측과 연이어 통합을 했다. 이 사이 예장 대신과 통합논의가 진행됐다. 2014년 9월 제37회 정기총회에서 총대들은 교단 명칭을 ‘대신백석’으로 하는 통합 추진안건을 통과시켰다. 통합으로 인해서 또 다른 분열이 생겨나지 않도록 대신에서 90% 이상이 합류하면 교단 명칭을 ‘대신’으로 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통합총회가 열린 2015년 백석의 교세는 5천500여 교회였다. 당시 대신총회는 해외교회를 제외하고 약 1700교회 정도 규모였다. 약 3배 이상 큰 교단이었지만 통합 앞에서 기득권을 내세우지 않았다. 

37회 정기총회에서 장종현 총회장은 “교단의 역사와 이름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다 안고 가는 것이 믿음”이라고 총대들에게 호소했다. 이러한 호소에 힘입어 백석 총대들은 대신과의 통합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렇게 백석은 수십 년째 추진해온 예장 대신과의 통합을 2015년에 마무리 짓게 된다. 

 

백석의 성장, 통합 덕분일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백석총회가 대신과 통합으로 엄청나게 세가 늘어났을까?”하는 의문이다. 백석이 대신과 통합으로 엄청나게 이득을 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세상 관점에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대신과 통합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통합으로 얻을 수 있는 숫자적 이득은 교세의 확장이다. 그렇다면 대신과 통합 후 백석의 교세는 얼마나 커졌을까? 

총회 촬요를 중심으로 통합 전후 교세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2015년 백석은 5천572교회. 대신 측 통합 참여 교회 수 1천244교회. 1천244교회는 대신측이 제시한 수다. 해외교회까지 포함된 것이다. 둘을 합하면 6천816개 교회다. 여기에 예장 합동진리와의 통합으로 수치상 교세는 7천 교회가 넘었다. 그런데 통합과정에서 허수가 있었다. 하지만 대신측이 제시한 통계를 믿고 일단 모두 수용했다. 당시 통합을 거부하고 남은 잔류 측(현 수호 측)의 주장에 따르면 대신총회 국내 교회 수는 약 1천700개 정도였고, 700교회 이상이 대신을 수호하기 위해 남았으며, 양측에 속하지 않고 중립을 선언한 교회가 300교회였다고 한다. 즉, 백석에 합류한 교회는 최소 700교회, 많게는 1000교회 정도로 추측된다. 

대신총회가 교단 명칭에 대해 법적 송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통합한 결과, ‘예장 대신 50회 총회 결의 무효소송’에서 통합한 대신측이 패소했고 대신 명칭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자 2017년 정기총회에서는 교단 명칭을 ‘대신백석’으로 하고 최종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백석’으로 즉각 변경할 것을 결의했다. 이때 ‘대신’ 명칭을 지킬 수 없다면 통합정신을 깨겠다며 교단을 이탈한 교회가 발생했다. 또 총회는 기도처 등 허수를 정리했다. 지난해 총회에서 교단 명칭이 ‘백석’으로 바뀌자 또 한 번의 이탈이 있었다. 명분은 ‘개혁’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총회에서 징계를 받거나 교단 명칭 변경에 반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때 이탈이 약 300~400교회다. 총회는 정확한 통계를 위해 허수를 한 번 더 정리했다. 

교세 통계에 대한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기도처 등 허수를 정리하고 이탈 교회들을 제외한 결과 현재 백석총회 산하 교회 수는 6천571개다. 아직 봄 정기노회가 열리지 않아 구 대신측 노회에 소속된 교회들은 뺀 수다. 

 

대신과 통합 직전 교세 5,572교회, 지난 4년 간 자연증가 800교회 넘어
교단 통합은 ‘교권과 정치’ 버리고 성경의 가르침 따라 순종할 때 가능

 

2015년 이후 자연증가 1천 교회 육박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통합 후 교단 명칭 등 문제가 생길 때마다 통합정신으로 이겨낼 노력 없이 뛰쳐나간 교회만 1,000교회 가까이 된다. 그런데 교세는 여전히 7천 교회에 가깝다. 큰 변동이 없다는 뜻이다. 이유가 뭘까? 

백석총회는 교단 통합 없이도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했다. 교회개척과 가입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2015년 이후 지난 4년 간 약 800교회 이상이 증가했다. 대신과의 통합 이전에는 매년 300개 이상이 가입을 희망했다. ‘백석’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높은 까닭이었다. 백석-대신 통합 직후 교세가 6,800여 개. 대신이 약 세 차례에 걸쳐 이탈했음에도 현재 교세는 6,500이 넘는다. 이 통계는 대신에 속했던 교회 전체를 뺀 숫자다. 봄 노회 후 잔류를 확정하게 될 구 대신 측 교회를 합치면 그 수가 다소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므로 “세를 불리기 위해 대신과 통합했다”는 말은 통계상으로도 근거를 만들기 어렵다. 대신총회는 애초 정확한 교회 수를 알리지 않았으며, 해외교회까지 그 수에 포함시켰으면서도 선교사 명단을 별도로 관리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교회가 통합에 합류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90% 이상이 합류하면 ‘대신’, 80% 이상이 합류하면 ‘대신백석’이라는 명칭을 쓰기로 세부합의를 함에 따라 90% 가까이 통합에 참여했다는 명분만 내세웠을 뿐이다. 

“하나가 되라”는 것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유언이다. 십자가 고난과 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대통합을 이루셨다. 누가 통합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통합을 위해 노력해온 것이 비난받을 이유는 아니다. 

한국중앙교회 원로 최복규 목사는 2015년 9월 14일 열린 백석과 대신의 통합총회에서 “하나됨보다 ‘힘써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나누기보다 하나됨에 힘쓰기 때문이다. 통합은 ‘교권과 정치’를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반대로 분열은 ‘교권과 정치’로 인해 생겨난다. 분열을 정당화할 명분은 없다. 

 

‘혈통주의’ 강조하는 대신총회

대신총회는 백석과 통합하면서 분열했다. 안타깝지만 이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2015년 교단 통합 후 구 대신측의 한 핵심 인사는 “우리는 백석과 합치지 않았어도 같이 살 수 없었다”고 당시 총회 분위기를 수차례 설명한 바 있다. 대신총회 안에서 통합 지지파와 통합 반대파가 오랜 시간 대립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대신이 통합을 추진한 교단은 백석이 처음은 아니다. 수없는 통합추진은 대신총회의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예장 성장 측과 통합을 추진했고, 예장 개혁과도 통합 목전에서 엎어졌다. 그때마다 대신이 강조한 것이 있다. 바로 ‘대신’이라는 ‘혈통’이다. 

백석(당시 합동정통)과 통합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2005년 창립된 대신포럼에서 성화교회 박상경 목사는 교단의 통합추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신인들은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이어온 개혁파 신앙노선을 따라 같은 말을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갖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대신의 종갓집 혈통을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그 날까지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2017년 9월 정기총회에서 ‘대신백석’으로 명칭 변경이 결정되자 구 대신 측의 한 증경총회장은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총회에는 하나님보다 ‘대신’이라는 이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기득권에 대한 내려놓음이 없이 통합은 불가능하다. 애초부터 대신과의 통합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토록 통합에 집착했을까? 항상 먼저 백석을 찾아와 통합을 요구했던 대신총회의 속사정을 다음호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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