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의 눈높이에서 같은 상처 입은 이들 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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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의 눈높이에서 같은 상처 입은 이들 품고 싶어요”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0.03.25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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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인사이더 - 백석대 신학대학원 고진호 전도사
생계 책임지려 뛰어든 공사장에서 사고…식물인간 선고받아
하나님의 기적과 위로로 회복, “후천적 장애인 아픔 돌보고파”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 있던 한 남자. 그랬던 그가 휠체어 신세를 지지 않고는 한 걸음도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지체장애인이 됐다. 처음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신을 도와주려는 손길조차 받아들이기 버거웠다.

하지만 이제 그는 좌절에 빠져 있지 않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비록 몸의 자유는 제한받고 있지만, 그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재학하며 장애인 목회를 꿈꾸는 고진호 전도사(40·서울은현교회)의 이야기다.

후천적 장애의 아픔을 이겨내고 같은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고진호 전도사.
후천적 장애의 아픔을 이겨내고 같은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고진호 전도사.

너도 내 백성을 살려라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안이었다. 이모의 도움으로 서울에 식당을 내고 빛이 보이나 싶었지만 잠깐이었다. ‘서울 드림의 소박한 꿈은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며 산산이 흩어졌다. 식당일을 접고 어머니는 파출부일로 생계를 이어갔고 고진호 전도사 역시 돈을 벌기 위해 공사판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청년 시절 잠깐 교회를 나가기는 했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했다기보다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소위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얕은 신앙은 현실의 고난을 만나자 큰 고민 없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주일 예배보다 휴일 수당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주일에도 현장에 나갔고, 자연스레 교회와는 멀어졌다. 고진호 전도사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은 사고도 그때의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1년 쯤 됐을 겁니다. 201311, 33살 때의 일이었죠. 평소처럼 공사장에서 용접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더니 H빔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1톤의 힘으로 밀어도 쓰러지지 않는 빔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삽시간에 제 쪽으로 쓰러져 가슴을 덮치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그때까지 살아온 날들의 흔적이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 이제 죽는구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손 쓸 도리가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했던 그때 희미하게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 두 천사들과 함께 고 전도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두 천사는 그를 짓누르던 빔을 들어내고 있었다.

현장 동료들이 사고를 당한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했다. 검사 결과는 경추 3, 4번 골절. 신경이 있는 척추를 다치면 반신불수의 위험이 있다고 하지만 경추의 경우 생명과 직결되는 부위다.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니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졌습니다. 저를 두고 멀찍이서 대화를 나누던 의사 선생님들의 이야기까지 밝게 들렸죠. 그런데 이 환자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져도 정신을 제외하곤 거의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식물인간 선고와 다름없었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고 눈앞이 깜깜해졌어요.”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2~3달 동안 병원 침상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도 잠시, 끝을 알 수 없는 무기력감이 몰려왔다.

몇 달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있는데 꿈을 꿨어요. 막혔던 혈관이 뚫리고 끊어졌던 관절이 연결되는 모습이 보였죠. 주님께서 내가 너의 막힌 혈관을 뚫어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고는 내가 너를 살렸으니 너도 내 백성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에서 깨 몸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까딱거리기 시작하더군요. 목숨을 건진 것에 이어 두 번째 기적이었죠.”

 

홀로 울던 광야에서 공동체로

그때부터 오른 손과 오른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신체의 왼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식물인간 판정까지 받았던 그에겐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12개월의 기나긴 입원 생활을 끝내고 병원 문을 나서는 날, 그길로 백석대 평생교육신학원에 입학원서를 냈다. 죽을 목숨을 살리고 건져주신 예수님께 남은 삶을 바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전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장애인으로서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원래 장충체육관에서 남산타워까지 달려 15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건강에 자신만만했던 고진호 전도사였다. 그랬던 그에게 전동휠체어 없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현실은 힘겹고 버겁기만 했다. 몸을 움직이게 됐다는 기적의 기쁨도 잠시, 이전의 평범한 일상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현실에 주저앉고만 싶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제 스스로가 자신감을 잃어버렸다는 점이었어요. 장애를 신경쓰며 의기소침해졌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어버리고 싶었죠. 마음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자 다가오는 친구들의 손길도 애써 외면한 채 점점 스스로의 열등감에 고립됐습니다. 점심을 함께 먹자고 다가오던 학우들에게 금식기도 중이라 둘러대고 자리를 피하기까지 했어요.”

그때 고 전도사에게 위로가 됐던 것은 수업 전 예배실에서 1시간의 기도시간. 온전히 조용하게 주님과 대화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예배실 맨 끝 자리, 홀로 조용히 앉아 주님께 하소연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자 차츰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믿음의 눈을 들어 다시 학교를 바라보자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혼자 울고 있는 자신이 아니라 함께 손잡아 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해주는 공동체가 보였다. 그 이후로 그에겐 새로운 학교생활이 시작됐다.

한 번은 학우들과 함께 난지 캠핑장에 나들이를 간 일이 있었다. 평소 부르던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려 했지만 그날따라 이용자가 너무 많아 배차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지하철로 발길을 옮겼다. 역에서 내려 내리막길로 캠핑장에 가려는데 갑자기 전동휠체어가 오작동을 일으켰다. 도로 경계석에 부딪혀 휠체어가 전복되고 고 전도사 역시 쓰러지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났지만 휠체어가 말을 듣질 않았다.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어쩔 도리를 몰랐죠. 그런데 그때 학우들이 주변 건물의 위치를 물어가며 저를 찾아와줬습니다. 무게가 250Kg이 넘는 휠체어를 번갈아 밀어가며 캠핑장에 데려다줬어요. 나중엔 수리가 불가능했던 전동휠체어를 다시 구입하는데 보태라며 학우들이 돈을 모아 주기까지 했고요. 너무나도 감사했죠.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고난의 터널을 지나도록

학우들의 끈끈한 우정과 함께 평생교육신학원 과정을 마친 고진호 전도사는 백석대 신학대학원에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비전을 더 전문적인 실력을 갖춰 펼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전체 장애인 중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의 비율은 약 90%에 달한다. 장애에 대해 전혀 생각지도 않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게 되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심해지면 우울증이 오기도 하고 극단적 생각까지 품는 이들도 있다.

고진호 전도사도 그랬다. 장애를 처음 안게 됐을 땐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아무리 좋은 말과 위로의 말을 들어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손을 내밀어주는 것조차 겁이 났다. 이런 고난의 시간을 견디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 나중에는 장애인 사역을 넘어 모든 약한 자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 그의 비전이다.

저와 같이 후천적 장애로 충격과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목회자가 되고 싶어요. 보다 앞서 그 절망과 어두움의 골짜기를 헤쳐 나온 선배의 입장으로 그 고난의 섭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물론 건강한 목회자분들도 그런 사역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위로가 있다고 생각해요.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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